한낮의 꿈

넴지지: 후후, 후후후후…… 제 추측이 맞았군요……! 여기에 있으면 당신을 만날 줄 알았습니다. '종말'을 몰아낸 모험가, ○○ 님. 갑작스러우시겠지만 실례합니다. 제 이름은 넴지지. 아이티온 별현미경에서 별바다를 관측, 연구하고 있는 '클로디엥' 선생님의 조수로 일하고 있습니다.위기에 처한 판데모니움

사실은…… 이 별바다를 관측하는 과정에서 저희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물품'이 발견됐거든요. 당신께 협력을 부탁드리고자 이렇게 찾고 있었습니다. 의뢰인인 클로디엥 선생님은 라비린토스의 '아포리아 본부'에 계십니다. 만약 협력해 주시겠다면 본부 쪽으로 와 주세요.

 

(아포리아 본부에서 클로디엥과 대화)

루이스노: 으아아, 눈앞에 ○○ 씨가……! 넴지지 선배, 진짜로 찾아내다니 대단해요.

넴지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클로디엥 선생님과 대화를…….

클로디엥: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씨……. 넴지지 씨에게 들으셨겠지만 별바다를 연구하는 클로디엥이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가슴이 두근거리는군요……. 사상 최초로 별바다 심층 탐색에 성공한 당신은 제 동경의 대상이시거든요.

넴지지: 다짜고짜 동경심을 고백하시는 저희 선생님은 이래 봬도 샬레이안의 연구자 중 별바다를 가장 심층적으로 관측하신 별바다 연구의 일인자이십니다.

클로디엥: ○○ 씨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해결해 주십사 하고 이렇게 도움을 요청드리고 있으니까요……. ……저희는 예전에 저지 드라바니아에 세운 '거꾸로 선 탑'을 통해 별의 의지, 하이델린을 만나 '종말'의 존재를 알았어요. 그 후에는 라비린토스로 연구 장소를 옮겨 아이티온 별현미경을 세우고 지금까지 별바다를 계속 관측해 왔어요. 별바다의 깊이에 비하면 고작 바닷가 정도의 범위지만요.

……그리고 대정리가 선언될 즈음이었을까요. 관측 중인 저희 앞에 신비한 '결정' 하나가 별바다 바닥에서 떠올랐어요. 결정의 에테르 밀도는 일반 크리스탈의 몇 배나 되었죠. 게다가 놀랍게도 인공적으로 가공된 형태였어요.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저희의 분석으로 판명된 건 거기까지……. 별 밖으로 탈출할 계획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결정 조사는 한동안 미뤄졌습니다.

그리고 종말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 다시 결정의 수수께끼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을 찾고 있었던 겁니다. 누구보다도 별바다 심층 탐색에 성공한 희대의 모험가인 당신께 문제의 결정을 보여 드리고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 어떤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부디……! 

 

클로디엥: 자, 이게 바로 그 결정이에요…….

(결정을 보고 놀라는 모험가)

 

(스쳐 지나가는 회상)

클로디엥: 당신의 기억이나 지식 속에 비슷한 것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얘기해 주세요!

 

▷ 똑같은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알아

▶ 기억을 봉인한 크리스탈이야

 

클로디엥: ……!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시군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야기하는 모험가)

클로디엥: 그렇군요, 아씨엔은 이 크리스탈을 이용해서 환생한 혼에게 예전 지위의 기억을 계승시켰다고요……. 귀중한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희귀한 결정이리라 추측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어요…….

넴지지: 그래요, 에테르의 결정은 기억을 새기는 매체가 될 수 있죠. 고대의 잡이 사용하던 전투술과 마법을 전달하는 소울 크리스탈…… 전쟁터에서 종종 발견되는 특수한 샤드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견본들을 모아서 비교하면 크리스탈 조사에 진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클로디엥: 아씨엔의 기억………… 14인 위원회의 기억이라……. ……하지만 모험가가 본 크리스탈에는 14인 위원회의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새겨져 있었을 텐데……. 그럼…… 이 기억의 주인은……. 아니, 그보다…… 왜 기억을 남기려 했는지가 문제야. 그리고…… 왜 별바다를 표류하고 있었는지…….

넴지지: 저기요~ 선생님~! 제~ 말~ 들~리~십~니~까~!!?

클로디엥: 응…………?

넴지지: 고민하시는 것도 좋지만 손님을 앞에 두고 혼잣말만 계속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 그 나쁜 버릇을 조수인 저희가 몇 번이나 지적했는지 아십니까?

클로디엥: 아앗!! 죄, 죄송합니다! 흥미로운 의문이 생기면 버릇처럼 그만……. 실례했습니다…… 조금만, 크리스탈을 만져봐 주실 수 있을까요? 전에 내부에서 새어 나온 기억이 들렸다고 하시니 어쩌면 이번에도…….

 

크리스탈에서 울리는 기억: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제발……. '판데모니움'으로…… 와 줘……! 이 위기…… 결코…… 방치해서는 안 돼……. 세계가…… 무너지고…… 테니…….

클로디엥: 혹시 뭔가 들리던가요……?

(이야기하는 모험가)

클로디엥: ……'판데모니움'. 안타깝게도 그 단어는 처음 들어 보네요. 옛 언어로 맞춰보자면…… '마의 소굴'이라는 뜻일까요……. 넴지지 씨, 루이스노 씨. 아까 제안해 주신 견본 수집을 당장 부탁할게요. 또 어떤 다른 기억이 봉인되어 있는지 알아내야 해요.

그리고…… ○○ 씨. 하나만 더 부탁을 들어주실 수 없을까요? 저희에게 경고를 보낸 이 '누군가'에 대해서……! 당신께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이 크리스탈도 고대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다면 '판데모니움'이라는 단어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갈라지기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단 한 명. 다른 세계를 경유해서 과거의 세계로 건너가 종말의 수수께끼를 풀어 낸 당신뿐……. 저희도 과거와 현대를 오간다는 것이 믿기 어렵다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표정을 보니 역시 사실이었군요. 다시…… '제1세계'였나요? 그곳을 거쳐서 과거로 가 주실 수는 없을까요? 부디 '판데모니움'이 뭔지, 꼭 알아내 주세요……!

감사합니다……. 조사하시는 동안, 그 크리스탈도 당신께 맡길게요. 과거의 세계로 가는 과정에서 다시 반응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

루이스노: 저도 열심히 클로디엥 선생님을 도울게요! 우선 필요해 보이는 사료를 선정하고, 그리고…….

클로디엥: 부디 '제1세계'를 경유해 과거로 가서 판데모니움에 닥친 위기를 밝혀내 주세요. 크리스탈도 지금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편이 좋겠지요.

넴지지: 소울 크리스탈을 되도록 많이 구해 볼게요. 이건 제 추측입니다만, 조달꾼에게 의뢰하면 특정 전장에서 샤드를 회수할 수도 있을 겁니다.

 

(빛나는 크리스탈의 모습)

크리스탈에서 울리는 기억: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제발…… '판데모니움'으로……!

(문으로 진입하는 모험가)

 

???: …………앗!

 

눈빛이 온화한 청년: 넌………… 아, 분위기가 비슷해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인가 보네.

테미스: 내 이름은…… '테미스'. 그녀가 말하는 '별'이 너라면, 그 별의 방문을 기다리는 자라고나 할까……. 그럼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할게. 가면을 쓰지 않은 걸 보면 알겠지만 나는 엘피스 사람이 아니야. 어떤 조사를 하기 위해 엘피스를 찾아왔는데…… 설마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과 부딪힐 줄이야. 

 

테미스: 재미있는 등장이긴 한데…… 자, 넌 어디서 온 누구일까? 자세히 보니 남들과는 다른 성질을 가진 것 같군.

 

▷ 나도 조사를 위해 엘피스에 왔다

▶ 아젬의 사역마다

 

테미스: 흐음, 아젬의……. 실은 아까 말했던 친구가 그녀인데…… 너같은 사역마를 갖고 있는지 몰랐어. 그나저나 사역마라니…… 재미있는걸. 그녀가 보냈다면…… 너도 '판데모니움'의 이변을 조사하러 온 거야? 사실은 나도 판데모니움을 조사하러 왔거든. 괜찮다면 네가 여기로 오게 된 경위를 알려 주겠어?

그렇군. 대략적인 건 이해했어. ……방금 이야기 중에 네가 어디에서 엘피스로 왔는지를 언급하지 않은 게 좀 신경 쓰이지만……. 누구든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밝히기 싫은 비밀 정도는 있는 법이지. 그보다 지금은 네가 말하는 수수께끼의 크리스탈인지 뭔지를 좀 볼 수 있을까? 

 

테미스: 흐음, 아쉽지만 나 역시 자세한 내용까지는 볼 수 없는데……. 누군가의 기억이 봉인된 건 확실해. 고마워……. 하지만 누구의 기억이든 경고를 한다는 건 역시 판데모니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 같아.

……판데모니움은 이 엘피스의 바로 밑에 존재해. 라하브레아 학술원이 관리하는 시설이지. 그 내부에는, 세상에 풀어놓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 위험한 창조 생물이 연구 목적으로 수용되어 있어. 물론 엄중한 관리를 받고 있지만…… 얼마 전, 시설 주변에서 이상한 에테르가 감지됨과 동시에 내부와의 통신이 끊어져 버렸어. 나는…… 14인 위원회와 관련된 조직 소속이야. 이번 사태를 접하고 조사하러 가려던 참이었지.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

마의 전당에 다다르다

테미스: 자…… 내 제안은 단순해. 목적지가 같으니 함께 판데모니움으로 가자. 혼자보다는 둘이서 하는 게 조사의 효율도 오르지 않겠어? 나와 함께라면 판데모니움에 들어갈 허가도 쉽게 받을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넌…… 내가 애타게 기다리던 '별' 같거든.

원래 난, 나처럼 판데모니움의 이변을 알아챈 동료와 둘이서 조사하러 갈 생각이었어. 그런데 동료가 망설였지. 조직의 일원이 둘이나 움직이면 세간의 주목을 받을 거라면서. 그리고 이런 말도 했어……. '괜찮아, 나를 대신할 별이 네 앞에 나타날 거야'라고. 아까 너와 착각했던 '친구'가 바로 그 동료야. 동료의 말을 믿고 계속 기다리길 잘했어…….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질 줄은 몰랐네. 아무튼 판데모니움에 들어가려면 시설을 관리하는 라하브레아 학술원에 허가를 받아야 해. 우선 아나그노리시스 천측원에 있는 직원에게 가자.

 

(천측원에서 학술원 직원과 대화)

테미스: 엘피스로 오기 전에 대충 얘기는 해 뒀어. 금방 허가가 나올 거야.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14인 위원회에서 받은 추천대로 판데모니움 시찰 희망자가…… 2명. 한 분은 상당히 특이한 에테르를 갖고 계시는군요. 두 분의 에테르를 등록하겠습니다. 앞으로는 판데모니움으로 이동하는 전송장치 사용은 물론이고 시설을 둘러싼 결계도 두 분을 거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테미스: 봐, 내가 그랬지? 나와 함께라면 쉽게 판데모니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이제 너도 나와 함께 조사하러 갈 수 있어.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출입은 허가되셨지만 내부의 창조 생물은 귀중한 실험체입니다. '간수'들의 지시를 잘 따라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테미스: '간수'는 판데모니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꽤나 섬뜩한 이름이지만…… 다 이유가 있지.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원래, 세계에 위험을 끼치는 창조 생물은 처분되어야 할 존재. 하지만 라하브레아 학술원에서는 아직 연구 가치가 있는 창조 생물에 한해 판데모니움에 수용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창조 생물을 외부로 도망치게 할 수는 없죠……. '간수'는 연구원이 아니라, 창조 생물을 시설 안에 구속해서 엄중히 감시하는 파수꾼입니다.

테미스: 창조 생물에게 판데모니움은 그냥 수용 시설이 아니야. 간수에게 모든 자유를 빼앗긴 '대감옥'이지.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두 분도 어떤 조사를 하러 가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문제를 발견하신다면 곧바로 보고해 주세요. 일단 라하브레아 님의 분부를 받아야 하니까요.

테미스: 일단이라……. 현재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나?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간수들에게서는 아무 보고도 없습니다. 다소 불안정한 에테르는 관측되고 있습니다만…… 문제가 있다면 벌써 라하브레아 님이 움직이셨을 겁니다.

테미스: ……그렇군. 그 라하브레아가 자기 관할하에 있는 판데모니움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그 라하브레아'라고 하시는 걸 보니 이쪽 분께서는 그분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이군요. 두 분은…… 혹시 라하브레아 님과 인연이라도 있으신가요?

 

▷ 그와는 만난 적이 있어

▶ 라하브레아라면 잘 알지……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정말 보기 드문 분들이시군요. 라하브레아 님은 남들에게 본인 얘기를 할 분이 아닙니다……. 그분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아무튼 라하브레아 님은 14인 위원회의 일원……. 그 활동에 해가 될 행동은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테미스: 자, 드디어 판데모니움을 구경할 시간이야. 전송장치는 여기서 북동쪽에 위치한 하늘섬에 있다더군. 어서 가 보자……!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판데모니움으로 가는 전송장치는 북동쪽의 하늘섬에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두고 가실 기세인데요?

 

(하늘섬에서 테미스와 대화)

테미스: 이게 전송장치구나. 그런데…… 너도 라하브레아를 만난 적이 있다니. 더욱더 너에게 흥미가 생기는걸.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은 서로에 대해 더 이상 캐묻지 말자. 때가 되면 서로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될 거야. 이 만남은 운명이거든. 지금은 판데모니움으로 가자. 나도 실제로 가보는 건 처음이야. 자, 가자……!

 

테미스: 대체, 무슨 일이지……. 그 직원의 태도가 하도 여유로워서 사실은 아무 일도 없는 게 아닐까 살짝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이번엔 나쁜 쪽으로 예감이 들어맞은 것 같아.

여기가 얼마나 엄중히 봉인되어 있는지 알겠어? 주위의 사슬을 비롯해서 눈에 보이는 것 대부분이 저마다 강력한 결계를 이루고 있어. 과연 라하브레아 학술원다운, 끝내주게 훌륭한 결계……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도 완벽하지는 않았나 보군. 아직 눈에 띄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판데모니움에 '누군가'가 간섭하고 있어……. 그리고 그 누군가는 주위의 결계를 안쪽에서 제거하려는 모양이야……!

……아, 지금 당장 창조 생물이 도망치는 사태는 없을 거야. 도착하자마자 결계를 강화하는 술법을 발동시켰으니까. 결계를 향한 공격을 완전히 무효화할 수는 없지만 침식 속도를 늦추는 데는 성공했어. ……그걸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상황을 정리하자. 가장 먼저, 우리의 의심은 현실로 드러났어. 판데모니움에서는 분명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어. 이 정적은 또 어떻고? 판데모니움을 엄중히 관리한다던 간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잖아. 간수에게 상황을 물어보고 싶지만…… 일단 그들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겠군.

……이것만으로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너에게 알릴 것이 하나 더 있어. 내가 결계를 강화하는 술법을 발동시켰다고 했지……? 조금이라도 술법을 완화하면 침식이 가속화될 기세거든. 사실은 지금도 마력을 계속 소모하는 상태지. 즉……. 결계를 공격하는 자나 수감된 창조 생물들과 만약 전투가 벌어져도 나는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야.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니, 네가 놀라는 것도 당연해. 나도 난감했을 거야…… 만약 혼자였다면 말이지. 정말 미안하지만…… 판데모니움 안에서 평화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을 때는 네 힘에 의지해도 될까?

 

▷ 나만 믿어

▶ 이럴 줄 알았어……

 

테미스: 대답하는 걸 보니까 혹시 이런 사태가 익숙한가……? 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부 떠넘기고 방관할 생각은 없어. 널 지원하는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을 거야. 창조 마법 말이야, 그러니까……. 네 존재를 핵으로 삼아, 너와 함께 싸우는 환영을 만들겠어. 그래…… 7명 정도면 어떨까? 전투가 시작되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럼 이제 들어가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판데모니움으로……!

테미스: 저 앞이 바로, 마의 전당…….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전투가 일어날 상황도 각오하고 가보자.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변옥편 1 공략 후)

테미스: 수고했어! 내가 만든 환영들도 잘 싸워 준 것 같고 네가 무사히 승리해서 기뻐. 그럼 이 청년이 깨어나길 기다리자. 간수로 보이는데 아무리 제정신을 잃었다고는 해도 우릴 어떤 위협으로 착각했는지도 물어봐야겠고.

○○, 이리 와 봐. 이 사람이 깨어난 것 같아……. 

 

에리크토니오스: 이럴 수가…… 내가 무슨 짓을…….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이해했어. 초조해진 상태에서 혼자 제정신을 잃었고 결과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당신들에게 달려들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덕분에 이성을 되찾게 됐어. 난 간수인 에리크토니오스……. 판데모니움은 시설 대부분이 지하에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지상에 가까운 '변옥'이 내 담당이야.

테미스: 네가 어쩌다 그렇게 난폭한 모습이 된 건지…… 판데모니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르쳐 주겠어?

에리크토니오스: '변옥'에 수감되어 있던 창조 생물들이 갑자기 '감옥' 밖으로 나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어…….

테미스: 그건…… 보통 일이 아닌데. 과거에도 그런 탈주 소동이 있었어?

에리크토니오스: 판데모니움의 각 층에는 관리자인 '간수장'이 있어. 그들이 시설을 엄격하게 통솔하고 있지. 이런 사태는 설립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야. 나도 동료들과 필사적으로 대처하려 했지만…… 혼란 속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 혼자였어.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 귓가에서 속삭이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새 변신까지 해서 닥치는 대로 공격을…….

테미스: 흐음…… 누군가가 정신에 작용하는 마법을 걸었을 가능성이 있겠네. 동료들과 떨어진 것도 그 공격의 영향일지 몰라.

에리크토니오스: 당신들이 여기에 왔다는 건 밖에서도 이 사건을 파악했다는 뜻이야?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다면 뭐든지 좋으니 가르쳐 줘.

(이야기하는 일행)

에리크토니오스: ……말도 안 돼. 판데모니움을 공격하는 녀석이 있다니.

테미스: 내부 상황을 감안하면, 공격자는 창조 생물을 풀어준 자와 동일 인물이겠지. 그 정체는 여전히 짐작도 할 수 없지만…….

에리크토니오스: 테미스라고 했지? 14인 위원회와 관련된 조직 소속이라고 했으니…… 이 사태를 위원회가 알면 어떻게 할 것 같아?

테미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들은 이곳을 이미 '끝난 장소'로 여기고 판데모니움 자체를 봉쇄하려 하겠지. 최악의 경우, 시설을 통째로 없애버릴 수도…….

에리크토니오스: ……그렇겠지. 결계가 깨지면 위험한 창조 생물이 바깥세상으로 나가 버릴 테니까. 그 가능성을 알면…… 망설이지도 않을 거야. 그렇다면 서둘러야 해……! 이 사태를 알려도 구해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면 내가 직접 판데모니움으로 돌아가서 모두를 구해야겠어……!

테미스: ……놀랍군. 너 혼자서 동료들을 구하겠다는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안에 있는 간수들이 이곳의 소멸을 받아들이겠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본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았어……!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서로를 지키며 필사적으로 창조 생물들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 했어. 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테미스, 제발…… 나를 믿고, 14인 위원회에 보고하는 건 보류해 줘.

테미스: ……안타깝지만 방금 전의 전투를 본 바로는 네게 내부의 창조 생물에 맞설 힘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믿고 싶어도 믿을 만한 근거가 부족해. 하지만 판데모니움 조사가 내 사명인 이상, 내부 상황을 보기도 전에 돌아가는 건 성급한 판단이겠지. 전투는 각오하고 왔지만…… 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전투 의지를 밝히는 모험가)

테미스: 후후, 후후후후후후…… 역시 넌,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하여간 재밌다니까. 게다가 묘하게 내 친구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군. ……아, 물론 나도 찬성이야. 아직 결정을 내릴 단계는 아니니까.

에리크토니오스: 저기, 당신들…… 대체 무슨……?

테미스: 판데모니움의 결계도 아직 더 버틸 수 있어.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너와 이 친구가 전부 알려줬잖아?

에리크토니오스: ……○○. 나와 판데모니움의 모두를 위해…… 정말 고마워.

테미스: 내부 상황을 아는 사람과 동료가 되면 우리 입장에서도 든든하지. 후후후…… 아주 기묘한 3인조가 되었지만 말이야. 자, 구체적인 구조 작전을 세워 보자. 우선 판데모니움의 문 앞까지 접근해 볼까? 에리크토니오스를 뒤따라 나온 탈출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테미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조사가 길어질 것 같아. 그런데 라하브레아는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건가? 그만큼 사건의 흑막이 막강한 상대라는 뜻일까, 아니면…….

물밑의 창조 생물

에리크토니오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간수든 창조 생물이든…… 모두 내부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구출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군.

테미스: ……에리크토니오스, 하나만 확인하자. 네 말을 들어 보면, 간수뿐 아니라 감옥을 벗어난 창조 생물까지 구하고 싶은 것 같은데 맞아?

에리크토니오스: 그 녀석들은 위험한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이곳에 있지. 이런 상황에서 내 고집일지는 몰라도…… 연구의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아.

테미스: ……판데모니움의 장관인 라하브레아도 부하인 네가 방금 한 말을 들으면 기뻐할 거야. 뭐, 이 사태를 보고할 수는 없지만 말이지.

에리크토니오스: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지만.

테미스: ……어, '그 사람'이라고? 넌 라하브레아를 만난 적이 있는 거야? 판데모니움에 얼굴을 비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에리크토니오스: 그럴 기회가 있었지. 다만 내가 가장 신세를 진 사람은 이곳 판데모니움의 선대 장관이지만. 판데모니움의 선대 장관의 이름은 '아테나'. 원래는 라하브레아 학술원의 연구자였던 사람이야…… 날 간수로 채용해 준 것도 그분이고.

테미스: 흐음, 라하브레아가 장관이 아니었던 시절도 있었던 거군. 하지만…… 넌 라하브레아 학술원을 위해서라기보다 신세를 진 선대를 위해 창조 생물들을 지키고 싶은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뭐, 그런 셈이지. 안타깝게도 그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지만. 난 간수장도 아니라서 '감옥' 마법도 쓸 수 없고……. ……아, '감옥' 마법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군. 당신과 전투할 때 내가 쓴 '사슬'을 기억해? 그 상위에 해당하는 봉인 마법이야. 둘 다 창조 생물을 구속할 때 쓰는데 '감옥'은 각 층을 관리하는 간수장에게만 사용이 허락된 마법이지. 내 마력의 양으로는 능숙하게 다루기가 힘들 거야.

테미스: ……그렇군. 현 장관 라하브레아가 고안했다는 '사슬' 마법에 대해서는 예비 지식이 있었지만……. 창조 생물을 일시적으로 봉인하는 것이 '사슬' 마법이라면 그 상위 버전인 '감옥' 마법은 주위의 공간까지 한번에 영구적으로 봉인하는 효과가 있는 거구나.

에리크토니오스: ……아까 전투 때 사용하던 환영도 그렇고, 마법을 상당히 잘 아는 것 같은데. 당신이라면 혹시 '감옥'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테미스: 안타깝게도……. 그 정도의 상급 마법을 발동하려면 술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해. 마법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건 맞지만 이 상황에서 간수장의 역할을 대신하기는 어려울 거야. '감옥'의 술식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 전투는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는 두 사람이 해결해 줘

▶ 술식은 에리크토니오스가 알지 않을까?

 

테미스: 흐음…… 일리 있는 말이군. 같은 계통인 '사슬' 마법에도 정통하고 당연히 '감옥'을 실제로 본 적도 있을 테니……. ……그래. 만약 네가 '감옥'의 술식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술법의 발동은 네가 맡고, 부족한 마력과 기술을 내가 보충해서…….

에리크토니오스: 우리도 '감옥'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거야……?

테미스: 바로 그거지. 단, 네가 '감옥'의 술식을 조금이라도 잘못 기억한다면 이 작전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겠지만…….

에리크토니오스: ……나만 믿어. 간수장이 '감옥'을 만드는 걸 수도 없이 봤어. 반드시 성공시킬게.

테미스: 좋아. 자세한 순서는 나중에 둘이서 다시 확인하자. 방침은 결정됐고, 이젠 실제로 어느 창조 생물에게 '감옥' 마법을 시도할지가 문제로군. 무턱대고 진입해서 '변옥'의 창조 생물들에게 포위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하면 아무 소용도 없잖아. 되도록 위치를 확실히 알고 있는 생물로 표적을 좁히고 싶은데.

에리크토니오스: 그렇다면 괜찮은 대상이 있어. 탈출 직전에 '히포캄포스'라는, 물에 사는 창조 생물이 지하수로 쪽으로 향하는 걸 봤거든. 지하수로는 입구에서도 가깝고 '변옥'에서 물을 좋아하는 건 그 녀석뿐이야. 거기라면 다른 생물의 방해를 받지도 않을 거야.

테미스: 그렇다면 첫 표적은 '히포캄포스'로 정하자. '감옥' 마법은 상대를 약하게 만든 후에 시험해 보고 싶어. 그러기 위한 전투는…… 네게 맡겨도 되겠지? 너만 믿는다. 우린 승리의 순간에 '감옥'을 발동시킬 수 있도록 환술 마법을 써서, 싸움을 지켜볼 수 있는 거리에서 몰래 대기할게.

에리크토니오스: '히포캄포스'는 줄어들 줄 모르는 생명력을 가졌어. 게다가 녀석의 마력이 주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고……. 지하수로에 흐르고 있는 하수를 조심해.

테미스: 각자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는 일은 종종 있지만…… 서로 힘을 합쳐서 한 가지 마법을 성공시키는 건 나도 처음 해 보는 도전이야.

에리크토니오스: 아까 말한 초대 장관도 판데모니움에서는 창조 생물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자주 말했지. 그래서 가능한 한 다시 봉인하고 싶어.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변옥편 2 공략 후)

(모험가가 히포캄포스를 쓰러뜨리자, '감옥'을 발동시키는 테미스와 에리크토니오스)

테미스: 연습할 기회도 없었는데…… 이렇게 일이 잘 풀리다니! 너의 묘안이 완벽하게 적중했어.

에리크토니오스: 당신,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히포캄포스를 완전히 압도하다니……! 이 정도로 전투에 숙달된 사람은 처음 봐! 급조한 팀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완벽한 성과야……. 이게 다 당신과 테미스 덕분이야! 테미스가 보내 준 마력도 어마어마한 양이었어. 솔직히 난 마법에 관해서는 도무지 자신 없었거든……. 그런 내가 '감옥'을 발동시키다니, 지금도 꿈만 같아.

테미스: 그게 정말이야? 그런 것치고는 ○○과 전투할 때 보여 준 '사슬' 마법은 훌륭하던데.

에리크토니오스: ……'사슬'은 내가 유일하게 특기라고 부를 수 있는 마법이야. 그것만큼은 어릴 적부터 아주 오랫동안 수련했거든. 다른 마법은 영 엉망이야. 여길 찾아온 게 당신들이라 정말 다행이야. 이 정도면 틀림없이 모두 구해 낼 수 있겠어……!

에리크토니오스: 그나저나 히포캄포스 녀석, 지하수로의 하수를 공격에 이용하다니……. 상대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면 그렇게 골치 아픈 거구나.

불꽃을 두른 창조 생물

테미스: 아무튼 히포캄포스 봉인에 성공한 건 다행인데…… 내부에서 간수들의 모습이 확인되지 않은 건 좀 걱정이 되네.

에리크토니오스: '변옥'의 간수장은 신중한 사람이야. 일단 우선적으로 태세를 재정비하느라 간수들을 모두 안쪽으로 유도했을지도 몰라.

테미스: ……신중한 사람이라. 에리크토니오스, 간수장에 대해 좀 가르쳐 주겠어? 각 층마다 1명씩 있고 '감옥'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지?

 

에리크토니오스: '변옥'을 이끄는 간수장은 헤스페로스라고 해. 창조 생물은 물론, 우리 간수들의 적성까지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유능한 인재지. 마법에 서툰 나도 많이 신경 써 주고……. 부하인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성격까지 훌륭한 인격자야. 간수장은 '감옥' 마법뿐 아니라 창조 마법으로 판데모니움의 내부 환경에 간섭할 수도 있어. 그분이 유도했다면 간수들도 안전하게 피신했을 거야.

테미스: 환경에 간섭할 수도 있단 말이지……. 히포캄포스는 수로에 있었기 때문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만약 주변을 사막으로 바꿨더라면 더 쉽게 제압했을 거야. 그 정도 힘이 있다면 태세를 재정비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어. 최대한 빨리 간수장과 합류하고 싶은걸.

에리크토니오스: 그럼 '변옥'의 최하층으로 가자. 그곳에는 바로 아래층인 '연옥'층과 이어진 연결 통로가 있어. 창조 생물을 피하려면 '연옥'에 들어가는 게 가장 안전하거든. 그리고 간수장이 다른 장소에 몸을 숨겼다고 해도 최하층으로 가는 도중에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테미스: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군. 최악의 경우라도 '연옥'보다 아래쪽의 상황 확인이나 지원 요청은 가능할 테니까…….

에리크토니오스: 그런데 문제도 있어……. '연옥'으로 가려면 긴 회랑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곳엔…… 아마 '페넥스'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테미스: 페넥스…… 들어 본 적 있어. '불사조'의 이데아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온몸에 불꽃을 두른 마조 말이지? 불사조의 이데아, 이름하여 피닉스……. 엄청난 치유의 힘을 지녔고, 그 불꽃은 사그라들지 않는다고 하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환상 생물 중에서도 최상위급이야.

그런 만큼…… 현 장관 '라하브레아'가 피닉스의 창조 마법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 일찍이 환상 생물의 이데아 창조에 통달한 여러 연구자들이 저마다의 해법으로 불사조를 탄생시키려고 했어. 그중 하나가 '페넥스'인 거고.

에리크토니오스: 하지만 페넥스도 불사조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려는 포악한 성질 때문에 최종적으로 판데모니움으로 오게 됐지.

테미스: 그 후에도 연구는 계속되었지만…… 오랜 세월 끝에 불사조 탄생은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리고 대부분이 포기했어. 유일하게 라하브레아 학술원의 연구자들을 제외하고 말이야. 그러다 라하브레아가 피닉스를 탄생시켰단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위업에 흥분이 돼서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니까? 라하브레아 학술원의 하부 조직에 소속된 너도 그랬겠지?

에리크토니오스: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학술원의 연구가 어떻게 되든 간수 일과는 별 상관이 없어서 라하브레아의 위업을 듣고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잊어 버렸어.

……아무튼 지금은 페넥스에 대해 생각해야 해. 최초로 이변이 일어났을 때, 혼란 속에서 난 녀석을 보았어. 불꽃 같은 꽁지 깃털이 회랑 쪽으로 향하던 모습을 말이야. 페넥스는 분명 지금도 그 주변을 떠돌고 있을 거야. 마주치지 않고 회랑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변옥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녀석을 봉인해두면 앞으로가 편해지겠지.

테미스: 그래, 나도 그 제안에 찬성해. 상대가 불꽃을 다룬다면, 회랑을 떠돌고 있다는 건 좋은 상황이야. 히포캄포스처럼 주변 환경을 이용할 일도 없을 테니까.

 

(회랑을 지나며 창 너머로 스쳐가는 페넥스를 바라보는 일행. 무어라 이야기를 나눈다.)

 

(일행을 지켜보던 헤스페로스가 망토를 펄럭이자, 공간이 바뀐다.)

 

에리크토니오스: 이, 이럴 수가!?

(판데모니움 정문 앞으로 순간이동하는 일행)

테미스: 방금 그건…… 흑막이 공간을 바꾼 거야. 아마도 페넥스가 최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으로……!

에리크토니오스: 공간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테미스: ……일단은 당장 위협적인 페넥스부터 상대하자. 모든 것은 그 공간에서 녀석을 봉인한 다음 확인하자고.

테미스: 아무튼 지금은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자. 그 공간은 페넥스가 최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일 거야. 부디 조심해.

에리크토니오스: ……페넥스를, 부탁한다.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변옥편 3 공략 후)

(모험가가 페넥스를 처치하자, '감옥'을 발동시키는 테미스와 에리크토니오스)

에리크토니오스: 페넥스는 무사히 봉인했어……! 이제 이 공간…….

테미스: 창조 마법으로 회랑의 환경을 바꿨단 말이지. 이런 일이 가능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건…….

 

테미스: 아니지, 그건 본인에게 물어봐야겠군. 거기에 있지……?

???: 아아, 증오스럽다…… 치가 떨리는구나……. 예사로운 침입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만 '감옥'마저 출현시키는 술사가 있었을 줄이야. 페넥스도 결국 '실패작'일 뿐이었나……. 싸우기 편하도록 환경을 바꿔 줬는데도 고작 사역마 정도의 에테르를 가진 자를 상대로 이런 꼴이라니.

테미스: 드디어 흑막이 납셨군……. 그런데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은 것 같네.

에리크토니오스: ……간수장 헤스페로스! 당신이 판데모니움 공격을 지휘하고 있었나!?

테미스: 판데모니움은 그 자체가 절대적인 감옥이라는 개념이지. 그 이데아에 손을 대서 내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간수장급 간부뿐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에리크토니오스: 이봐, 정말 당신이 그런 거야!? 왜 그런 짓을…… 게다가 그 모습은 대체 뭐야?

 

헤스페로스: ……에리크토니오스, 질문만 입에 담다니 어리석구나. 지금 이 상황과 내 모습을 보고 한두 가지쯤은 스스로 추측을 해보는 게 어때? 그리도 생각이 얕으니 넌 영원한 자격 미달이라는 거다. 하여간 '라하브레아' 님을 닮은 듯하다가도 참…….

에리크토니오스: ……당신이 헤스페로스 간수장인 건 틀림없나 보군. 하지만 내면은 아주 딴판인 모양이야. 내가 아는 헤스페로스 간수장은 페넥스는 물론, 모든 창조 생물을 소중하게 아꼈어. 우리 간수들도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대해줬는데……. 그런데 그게 당신의 본성이었어!? 이런 짓을 하려고 그동안 우릴 속여온 거냐고!

헤스페로스: 호수의 표면만 보고, 바닥은 들여다보려 하지 않지……. 그게 바로 네가 생각이 얕다는 증거다. 육체가 어떻게 바뀌든 이 마음에는 그 어떤 혼탁함도 없다. 난 자격 미달인 네가 늘 증오스러웠다. '라하브레아' 님의 아들이면서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무능한 네놈이 말이다!!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 따위 알 게 뭐야…… 그딴 녀석은…………!

헤스페로스: 너 따위가 감히……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멍청한 놈도 알아듣도록 가르쳐 주마. 나는 이미 미천한 '인간' 따위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창조 생물과의 융합을 통해 반신, '헤미테오스'로 거듭났다! 

 

헤스페로스: 이제 난 그분에게 가장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 '감옥'에 들어가 줘야겠다……! 

 

테미스: 어림없는 소리……!

('감옥'을 깨부수는 테미스)

테미스: ……네가 어리석다고 조롱한 에리크토니오스는 지금껏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해 왔어. 그래서 '사슬'뿐 아니라 '감옥' 마법의 술식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거야. 그에게 배우면 술법을 깨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 일단 후퇴해서 태세를 재정비하자. 헤스페로스라는 저 남자…… 심상치 않은 힘이 느껴져. 지친 몸으로 연달아 싸울 만한 상대가 아니야.

(순간이동으로 자리를 뜨는 일행)

헤스페로스: ……'감옥' 마법을 재현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격파하는 술사, 그리고 페넥스를 상대로 압도적 승리를 쟁취한 사역마……. 아무래도 경계할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저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창조 생물의 봉인과 동포 구출이니 나는 그저 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 ……기다리마, 에리크토니오스. 자격 미달인 네놈도 아직은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판데모니움 정문에서 테미스와 대화)

에리크토니오스: ………….

테미스: 참 나, 이번에는 불길한 예감이 매번 현실이 되어 버리네. ……설마 진짜로 간수장이 흑막이었을 줄이야. 보아하니 헤스페로스는 에리크토니오스를 증오했던 모양이야. 게다가 이제 자신이 라하브레아에게 가장 쓸모 있는 존재라고 하던데……. ……에리크토니오스는 밖으로 나온 뒤에 계속 저렇게 멍하니 서 있어. 흑막의 정체를 알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겠지.

간수장은 마지막 방에서 기다린다

테미스: ……가능하다면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싶지만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에리크토니오스와 얘기를 해 보자. 간수장에 대처할 방법은 물론이고…… 그가 밝히지 않았던 '라하브레아'와의 관계도 말이야.

테미스: 라하브레아의 얘기가 나왔을 때, 그는 급히 화제를 바꿨어. 아버지에게 뭔가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을지도 몰라.

 

(에리크토니오스와 대화)

에리크토니오스: 저 '사슬' 결계, 굉장한 술식이지? 판데모니움을 설립할 때 라하브레아가 쳤다더군. '아버지'와 나의 연결 고리라고는 내가 쓰는 사슬과 감옥을 둘러싼 저 사슬…… 그게 다야.

테미스: 역시 넌 라하브레아의 아들이 맞았구나.

에리크토니오스: 마법 실력도 엉망인, 자격 미달인 아들이지만 말이야. 역시 맞았다니, 테미스는 눈치채고 있었나 보군.

테미스: 현 장관 라하브레아가 만든 '사슬' 마법. 그거 하나는 특기라고 그토록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고 어려서부터 학술원에 있었거나 그 사람과 무슨 관계가 있겠다 싶었지.

에리크토니오스: 그가 가르쳐 준 건 이 마법뿐이었어. 그 후로는 연구를 위해 학술원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어……. 날 키운 사람은 마찬가지로 학술원의 연구자였던 어머니야.

테미스: 히포캄포스와 싸우기 전에 네가 말했던 판데모니움의 초대 장관, 아테나……. 그 사람이 네 어머니지?

에리크토니오스: 정말…… 무서울 정도의 통찰력이군. 맞아. 난 존경하는 어머니, 아테나의 부름을 받고 판데모니움에서 일을 시작했어. 절대로 라하브레아를 위해서가 아니야.

테미스: 아버지 라하브레아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런데 어쩌다가 라하브레아가 장관 자리를 이어서 맡게 됐지?

에리크토니오스: ……어머니가 죽었으니까. 그런데도 라하브레아는 그저 묵묵히 장관 자리에 앉더군. 그런 인간을…… 난 도저히 존경할 수 없어……!

테미스: ……'죽었다'라. 넌 인간이 생을 마감하는 일을 그렇게 표현하는군. 난 공적인 자리에 있을 때의 라하브레아밖에 모르지만 그는 언제나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야. 그건 분명……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서라도…….

에리크토니오스: ……미안하지만 어머니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어. 자꾸만 라하브레아의 치 떨리는 얼굴이 떠올라서.

테미스: 알겠어. 현 상황을 타파하는 것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 간수장…… 헤스페로스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해 보자. 이번에도 다른 간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아마 헤스페로스가 간수장의 권한을 써서 '감옥'에 가둔 것 같아.

우리의 존재를 알아챈 이상, 헤스페로스도 자신에게 최적의 환경으로 바꿔 놓고 우릴 기다리겠지…….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창조 생물을 일일이 상대하는 것보다 원흉인 헤스페로스를 제압하는 방법이 더 확실해. 전력을 다해서 쓰러뜨려 보자……!

에리크토니오스: ……창조 생물과 융합했다면 간수장을 '감옥' 마법으로 봉인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

테미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설마 이런 사태를 일으킨 그를 쓰러뜨리지 말고 봉인하자는 말이야?

에리크토니오스: ……이유를 듣고 싶어. 왜 이런 일을 벌인 건지. 헤스페로스 간수장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누구보다도 라하브레아에게 인정받기 위해 힘을 찾다가 창조 생물을 해방시키고 융합했다…… 는 얘기가 되는 건데.하지만 판데모니움은 라하브레아가 관할하는 시설이잖아? 그 시설을 망가뜨리는 짓을 달가워할 것 같지는 않은데.

테미스: 그건 나도 같은 의견이지만…… 상대의 목적은 불명확하고 지리적인 이점도 적에게 있어…… 상황이 좋지 않아. 실제로 선두에 서야 하는 넌 그를 봉인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 일단 해 보자

▶ 실패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테미스: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하다니……. 어떤 아수라장을 경험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든든하네.

에리크토니오스: ○○, 고마워……. 에리크토니오스: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깨달은 게 있어. 간수장은 브리콜라카스라는 창조 생물과 융합한 것 같아. 먹이의 에테르를 흡수하는 생물이지.

테미스: 그리고 판데모니움의 내부 환경에 간섭할 수 있는 간수장의 권한을 이용해서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려고 할 거야. 불리한 상황에서 싸우게 되겠지만…… 널 믿을게.

에리크토니오스: 이런 방법으로 힘을 얻으려 하다니, 누가 더 어리석은지……. 내가 직접 헤스페로스를 쓰러뜨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내 실력으로는 되려 당하기만 할 테니…… 이 분노는 네게 맡길게.

테미스: 그나저나…… 반신 '헤미테오스'라. 융합 능력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생물을 자기 몸에 흡수하다니 별 끔찍한 짓을 다 하는군.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변옥편 4 공략 후)

에리크토니오스: 자, 테미스! 헤스페로스를…… 봉인하자!

('감옥'을 발동시키는 테미스와 에리크토니오스)

 

헤스페로스: 누구…… 맘대로…….

 

('감옥'을 깨부수는 헤스페로스)

헤스페로스: 이런 불확실한 존재에게 반신인 내가 지다니……. 역시 가장 경계할 대상은 너였던 건가. 비록 패배했지만 너희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나의 육체…… 무엇보다 내 심중이 밝혀지게 둘 수는 없어……!

테미스: 아직도 저항할 셈이냐? ○○과 싸우면서 한계에 도달했을 텐데…….

헤스페로스: 그래, 하지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나의 결말은…… 내 손으로…….

 

헤스페로스: 후후후…… 기쁘구나…… 그분을 배신하지 않고 숭배하며……. 이것이야말로 나의 바람…… 나의 아름다운 마……지막…….

에리크토니오스: 헤스페로스…… 바보 같은 사람…… 정말, 바보 같으니라고……. 나 같은 '자격 미달'에게 집착하다니……. 간수장으로서 변옥을 훌륭하게 통솔하던 당신이야말로 라하브레아가 훨씬 더 신뢰한 사람일 텐데…….

테미스: 이 별의 일원으로서의 역할보다 자신의 소망을 우선하고, 그것이 좌절되자 스스로 별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다니. 이런 마지막도 있다는 뜻인가…….

에리크토니오스: 그래도…… 적어도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정도는 가르쳐 줬으면 했어.

테미스: 가슴속에 품고 있던 라하브레아를 향한 숭배. 그 감정이 쌓이고 쌓여 아들인 널 질투하고 증오한 결과, 이성을 놓아 버리고 더 큰 힘을 바라게 된 것일까…….

에리크토니오스: 누군가를 심하게 증오할 정도의 숭배와 존경……. 너도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어?

 

▷ 이해는 하지만 동조할 수는 없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에리크토니오스: 그렇군……. 나도 도저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공감되는 부분도 있어. 그 사람의 말이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있고, 별의 미래를 위해 그 사람이 제시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한 상대가…… 나에게도 있었으니까.

……뭐, 헤스페로스의 진심이나 목적이 뭐였든 이제 동료들과 창조 생물을 구출할 수 있게 됐어. 지금은 그 사실을 기뻐할 때야.

테미스: 그건 나도 도울 수 있을 거야. 변옥 전역을 뒤덮었던 헤스페로스의 마력은 사라졌어. 지금이라면 이 시설의 제어권을 장악해서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여기서 제어권을……!? 넌 그런 것까지 할 수 있어……?

 

테미스: ……! 이 기운은 뭐지……? 에리크토니오스, 저 너머는…….

에리크토니오스: 아, 변옥 밑에 있는 '연옥'층으로 통하는 곳이야. ……왜 그러는데?

테미스: ……둘 다 경계 태세를. 변옥이 정상화되니 이제야 아래층의 기운이 느껴져. 저 너머는 아직……! 

 

에리크토니오스: 여, 연옥으로 가는 통로에 결계가!?

테미스: ……일단 지상으로 돌아가자.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지상에서 테미스와 대화)

에리크토니오스: 끝이 없네……. '변옥'뿐 아니라 '연옥'과 그 밑의 층에서도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가……?

테미스: 우선 한 가지 말해 둘게. 헤스페로스는 쓰러뜨렸지만 판데모니움에 일어나는 이변은 전혀 수습되지 않았어……!

에리크토니오스: 아직 이해가 안 되는데…… 헤스페로스 간수장은 이 사건의 흑막이 아니었다는 거야?

테미스: 안타깝지만 그래. 아무래도 진짜 흑막은 '연옥' 아래의 층에 있는 것 같아. 처음 만났을 때 넌 착란 상태였는데, 분명 그것도 흑막의 소행이었을 거야……. 상대는 정신 마법에 상당히 통달한 것으로 보여. 헤스페로스도 마법적으로 소망을 증폭시켰다면 동기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점도 설명이 돼. 그가 어떻게 '융합'을 해냈는지도 말이야…….

에리크토니오스: 잠깐만, 융합이라면……! '연옥' 아래에도 많은 간수들과 창조 생물이 있잖아.

테미스: 너도 눈치를 챈 것 같군. 간수들은 융합체 '헤미테오스'인지 뭔지에 이용할 '재료'로 일부러 남긴 거라고 봐야겠지……!

에리크토니오스: 그러니까…… 동료들이 모두 헤스페로스 간수장처럼 융합체가 되었다는 말이야?

테미스: ……아니. 그토록 정밀하게 융합시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야. 아직 대부분의 간수는 무사할 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옥으로 가는 길은 적의 결계로 봉쇄되어 버렸어. 우선 결계를 조사해서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해.

에리크토니오스: 그렇다면 아까 그 방에서 결계를 조사해야 하는 건가. 변옥에 남은 창조 생물이 방해하지 않아야 할 텐데…….

테미스: ……여기서 한 가지 희소식도 알려 줘야겠군. 다행히 변옥의 제어권은 아직 내가 장악한 상태야. 지금이라면 '감옥'을 써서 한꺼번에 다시 봉인할 수 있겠지.

에리크토니오스: 저, 정말이야……? 그럼 변옥의 창조 생물은 모두 원래대로 가둬 둘 수 있는 거지?

테미스: 다시 봉인한 다음에는 유일한 간수인 네가 그들을 관리해야겠지만 말이야. 연옥에 들어갈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안전할 거야.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 정도로 사태가 심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 되도록 우리 힘만으로 해결하고 싶기는 한데…….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에게 이 사태를 보고할 생각이야?

테미스: 뭐, 그것도 연옥에 들어갈 수 있게 된 다음에 생각하자……. 간수들의 안부와 흑막의 정체를 밝힐 정보를 모은 후에 판단해도 늦지는 않겠지.

에리크토니오스: ……알겠어. 나도 동료들과 창조 생물의 피해가 늘어날 바에야 차라리 라하브레아를 부르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 

 

테미스: 게다가 흑막이 따로 있다면 간수장의 숭배 대상, 그 말과 행동이 다른 의미를 갖게 돼……. 지금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으니 신중을 기하는 게 좋겠어. ……아무튼 나와 에리크토니오스는 계속 판데모니움에 남아 있을게. 다만, 당분간 전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에리크토니오스: 그러니 ○○만이라도 휴식을 취하도록 해. 육체적인 피로는 당신이 제일 많이 쌓였을 테니까. 테미스에게는 계속 부담을 주게 되겠지만……. 너희 두 사람 덕분에 지금의 성과가 있는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창조 생물을 관리하는 것뿐이야. 이참에 일거리는 내게 미루고 쉬어.

테미스: 이런, 스스로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거 아니야? 창조 생물에 관한 지식이나 '감옥' 마법……. 전부 네가 없었다면 몰랐을 것들이잖아. 우린 여기에 온 경위도, 입장도 다 달라. 그래서 더욱더 각자 잘하는 분야를 활용할 수 있었어. 누구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판데모니움은 구하지 못했을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미안, 헤스페로스 간수장의 평가 때문에 내가 위축됐었나 봐. 최선을 다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안에 있는 모두를 구하자. 바로…… 우리 셋이서, 맞지?

테미스: 그래 바로 그거야. 어쨌든 나도 에리크토니오스의 제안에 찬성이야. ○○에게는 진짜로 휴식이 필요해. 휴식도 할 겸, 크리스탈을 네게 맡긴 상대에게 중간 보고라도 하고 오면 어때?

에리크토니오스: 그래, ○○은 14인 위원회의 관계자가 아니었지? 그렇다면 라하브레아에게 누설될 걱정도 없겠군.

테미스: 나도 친구에게만 상황을 전달해 둘까 해. 내가 여길 벗어나면 흑막에 의한, 결계 침식 속도가 더 가속될 테니 친구에게 외부 일을 몇 가지 맡겨 놔야 할 것 같거든…….

 

(아포리아 본부에서 대화)

넴지지: 클로디엥 선생님의 판단으로 각 기관에는 최소한의 내용만 보고하고 있어요. 실제로 현대에는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루이스노: 수집한 크리스탈의 에테르 파형 기록을 모조리 다 제출하라는데 클로디엥 선생님은 왜 그렇게 힘든 일만 시키실까요. ……조수 입장에서는 그런 요구가 더 의욕을 불태우게 만들지만요!

클로디엥: ○○ 씨, 어서 오세요! 과거 세계에서 무슨 단서라도 얻으셨나요……?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모험가)

클로디엥: 판데모니움에 닥친 위기. 그 조사가 옛 창조 생물과의 전투가 될 줄이야……. 어쨌든 무사히 돌아오셔서 천만다행입니다.

넴지지: 크리스탈에서 들린 경고는 사실이었던 걸까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크리스탈을 남긴 인물의 정체와 목적에 대해 점점 더 의문이 생기는군요.

클로디엥: 흐음, 고대인과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인지, 혹은 후세에 판데모니움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게 된 누군가인지. 결정에 담긴 기억의 수수께끼는 아직 오리무중이군요.

……하지만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있습니다. ○○ 씨가 다시 과거의 현상에 개입했고 또 아무 일 없이 그 후의 미래인 현대로 돌아오셨다는 점이죠. 즉, 판데모니움의 위기는 ○○ 씨가 개입했다는 것을 전제로, 현대까지 이어진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 위기를 방치했다가는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요.

특히 미지수인 점은…… 그 흑막의 속셈대로 판데모니움에서 위험한 창조 생물이 풀려났을 경우입니다. 그로 인해 과거의 세계에 혼란이 일어나면 고대인에게 더욱 큰 공포가 각인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공포나 절망의 감정은 '종말의 야수'를 강대하게 만들죠…….

루이스노: 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과거의 '종말'이 더 큰 규모의 재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신가요? 설마……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가 끊어질 가능성도……?

클로디엥: 엘피스의 미래와 현대의 연결고리를 끊어서는 안 됩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부디 사건을 끝까지 해결해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또 당신에게만 중책을 맡기는 저희를 용서하세요. 저희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아, 그 크리스탈은 돌려주시겠어요?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에는 당신 혼자서도 갈 수 있는 것 같으니 내부에 담긴 기억을 더 조사해 보고 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과거의 세계에서도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듯하니 저희가 연구하는 동안에는 부디 휴식을 취하시길……. 참!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저희 연구에 참여할 조수를 한 명 더 구했어요. 당신의 조사와도 관계가 있으니 소개하겠습니다.

'밀레니'는 동서고금의 무기를 연구하고 있어요. 만약 과거의 세계에서 유용해 보이는 물품을 발견하시면 상태가 어떻든 간에 밀레니에게 가져다주세요. 연구 중에 얻은 연줄을 활용해서 당신께 도움이 될 장비로 교환하거나 가공해 줄 겁니다. 앞으로도 전투는 계속 일어날 테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고해 주신 내용은 조수인 넴지지 씨가 전부 기록하고 있습니다.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넴지지 씨에게 물어보세요!

……어쩐지 예감이 드는군요. 이 연구가 제 평생 가장 중대한 것이 되리라는 예감 말입니다. 게다가 동경의 대상인 당신이 힘을 빌려주시다니. 이토록 행복하고 든든한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저도 최선을 다해 연구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크리스탈 안의 기록을 분석하는 데 성공하면 분명 판데모니움의 사건에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뭔가 밝혀지면 곧장 알려 드리겠습니다.

판데모니움에 숨은 짐승

루이스노: 저는 감각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요……. 조사에 도움이 되는 발상 같은 건 떠올리지 못하겠지만, 자료 수집으로 도움을 드릴게요!

클로디엥: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 씨! 대발견이에요! 그 '기억의 크리스탈'을 조사한 결과 드디어 저에게도 '목소리'가 들렸어요!

넴지지: 선생님, 클로디엥 선생니임……! 새로운 발견에 흥분하신 탓에, 연구자의 나쁜 습관이 또 나오고 있거든요? 다짜고짜 열을 올리며 말씀하시면 상대는 당황스러울 거라고요.

클로디엥: 앗…… ○○ 씨, 죄송합니다! 연구를 시작하기만 하면 앞뒤 안 가리게 돼서……. 지난번에 별바다에서 나타나 당신에게 경고를 했던 결정…… 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크리스탈을 기억하시나요? 고대세계에 존재했던 '판데모니움'. 대감옥으로도 불리는 그 시설은 경고대로 누군가에게 지배당해 창조 생물과 인간의 융합이라는 끔찍한 실험이 행해지고 있었죠……. 그리고 당신은 현지에서 만난 테미스 씨와 함께 판데모니움의 간수인 에리크토니오스 씨를 구출하였고, 그의 협력까지 얻어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변옥'층의 지배당해 창조 생물과 인간의 융합이라는 끔찍한 실험이 행해지고 있었죠…….

그리고 당신은 현지에서 만난 테미스 씨와 함께 판데모니움의 간수인 에리크토니오스 씨를 구출하였고, 그의 협력까지 얻어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변옥'층의 지배권을 되찾았어요. 하지만 더 깊이 '연옥'층 아래로는 아직도 정체불명의 적대 세력에게 지배당하는 상태……. 그 정체와 목적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었잖아요? 그 뒤로 우리도 새로운 정보를 찾아 크리스탈을 조사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내부의 기억이 발신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강한 사념을 감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념의 내용을 분석해보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어요……! 아무래도 현대에 이런 크리스탈이 하나 더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 수색을 하러 갈까 합니다. 감지해낸 사념과 동일한 에테르 파형을 찾으면 분명 또 하나의 크리스탈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루이스노: ……수색은 저희 연구원들끼리만 가는 건가요? 아니면 ○○ 씨도 현대에 머물면서 저희와 동행을 하시나요……?

클로디엥: 아뇨, ○○ 씨는 다시 고대세계로 가셔야죠. 사건의 발단이 판데모니움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이야기를 들어보니 크리스탈 타워의 시간 역행 기능은 '특정 시간' 만큼 역행할 수 있도록 고정되어 있다는군요. 정기적으로 고대세계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넴지지 씨, 루이스노 씨. 당신들도 여기에 남아 주세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관측된 창조 생물의 기록을 부탁합니다.

루이스노: 그, 그럼…… 혼자서 크리스탈을 찾으러 가실 생각이세요?

클로디엥: 네, 그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이동용 비공정과 비행사는 이미 수배해놨으니 안심하세요. 그럼, 뒷일을 부탁해요……!

루이스노: ……원래도 뭐 하나에 몰두하면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분이지만, 너무나도 급하게 떠나 버리셨네요.

넴지지: 사념을 감지한 뒤로 계속 저런 상태예요. 본인에게도 기억의 소리가 들린 것이 어지간히 기뻤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번에도 소외된 느낌이네요……. 지난번 경고가 당신에게만 들렸듯이 이번에도 크리스탈의 사념은 선생님에게만 들렸거든요.

루이스노: 뭐,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에테르 파형을 추적하면 수색 장소도 찾을 수 있는 것 같으니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 씨도 선생님 말씀대로 다시 판데모니움으로 가주시겠어요?

넴지지: 아, 그 부분에 관해 사실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판데모니움으로 가려면 엘피스를 들러야 하시잖아요. 엘피스에서 잠깐 조사해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판데모니움에 수용된 창조 생물은 세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정을 받은 '실패작'이라지만…….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실패 낙인이 찍히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중에는 판데모니움으로 보내지기 전에 엘피스에서 생태 관찰을 했던 개체도 있을 겁니다.

루이스노: 그렇군요…… 즉, 엘피스에서 관찰 기록을 조사함으로써 판데모니움에 수감된 창조 생물의 정보를 파악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넴지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현지에서 기록을 관리하는 시설을 찾아봐 주세요. 시설 직원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페리페테이아 결정 자료관에서 대화)

테미스: 오, 엘피스에서 너랑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

결정 자료관 직원: ……당신도 판데모니움에 관한 기록을 찾으십니까? 여기 테미스 님께서도 조금 전에 같은 의뢰를 하셨습니다만.

테미스: 아무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본데……? 엘피스에서 판데모니움으로 보내진 창조 생물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조사를 끝냈어.

결정 자료관 직원: 두 분은 서로 지인이신 것 같으니 다시 자료를 꺼내올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딱히 다른 용무는 없으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테미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지만, 마침 잘 됐다. '연옥'으로 가는 계단에 걸린 봉인은 무사히 해제했고, 네 귀환을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조사하고 있었거든. 판데모니움을 감싼 결계에 대한 간섭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우리 쪽 방어마법을 적극적으로 돌파하려는 움직임도 없어서 감옥을 감시하는 역할은 에리크토니오스에게 맡겨뒀어. 에리크토니오스도 창조 생물을 재봉인하는 '감옥' 마법을 혼자 힘으로 발동시키고 싶다며 수행에 여념이 없는 상태거든. 흔쾌히 감옥에 남겠다 하더라고.

……그래, 기왕 우리 둘만 있게 되었으니 너도 내가 하려는 조사에 동행해 주지 않겠어? 이번 기회에 내가 품고 있는 의문점도 말해두고 싶으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거야.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인물이 한 명 더 있어서 판데모니움으로 가는 전송장치 옆에서 만나기로 했어.

 

(전송장치 앞에서 대화)

테미스: 흠……. 내가 마음에 걸리는 게 뭐냐면, 판데모니움에서 만난 자들이 모두 '라하브레아' 장관에게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야. 네가 쓰러뜨린 간수장 헤스페로스는 라하브레아에게 강하게 심취해 있었어. 에리크토니오스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인 라하브레아를 지독히 증오하고 있었고.

너도 꽤나 특이한 사람이라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어떤 한 개인에게 그 정도로 강한 감정을 갖는 인간은 드물어. 나도 당연히 부모님이 있고, 개인적으로 감사한 마음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 세상을 함께 사는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거든. 그게 나의…… 아니, 세상의 일반적인 생각이야.

그에 비해 판데모니움에는 라하브레아에 대한 강한 감정에 사로잡힌 자가 너무 많아……. 그밖에도 판데모니움에는 이질적인 점이 많아서 관계자……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에게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 해.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테미스 님. 판데모니움을 조사하는 데 있어 설립 당시의 사정을 알고 싶으시다고요……?

테미스: 그래,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 왜 판데모니움이 엘피스에 지어졌는지, 그 경위를 알고 싶어. 판데모니움은 라하브레아 학술원의 관리하에 있는 시설이잖아. 굳이 다른 조직이 운영하는 엘피스 아래에 건설한 이유가 대체 뭘까 싶어서……. 지금까지 나는 입지적인 이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 생물 관찰을 엘피스에서 하기 때문에 '실패작'으로 판단된 창조 생물을 판데모니움에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결정 자료관의 기록을 조사해보고 놀랐어. 판데모니움에 수용되어 있는 창조 생물의 대부분은 라하브레아 학술원을 비롯해 엘피스 밖에서 이송되고 있더라고. 결정 자료관에 남아 있던 창조 생물의 정보도 극히 적어. 이럴 거면 처음부터 학술원이 있는 애나이더 아카데미아의 부지에 짓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판데모니움의 이 기묘한 입지는 어떻게 된 거지?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긴 세월을 운용해오며 뒤죽박죽된 터라 저희도 문제인 건 압니다. 하지만 시설의 성격상, 이전도 쉽지 않아요……. 설립 초반에는 당신 말씀처럼 운용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판데모니움에 수감되는 창조 생물의 대부분이 엘피스에서 이송되었죠. 하지만 점차 상황이 달라졌어요. 애초에 엘피스로 보낼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된 실패작 중에 괜찮은 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거든요.

테미스: ……시대 변화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너무 급격한 변화인걸. 연구 대상을 선정하는 건 누구지?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라하브레아 님입니다. 원래는 판데모니움의 장관이 선정권을 갖지만, 현재는 라하브레아 님께서 장관직도 겸임하고 계시니까요.

테미스: 즉…… 연구 대상 선정에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자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현재는 라하브레아 장관뿐이라는 뜻이지?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시설을 운영하는 간수장들의 눈도 있습니다. 라하브레아 님이라 해도 독단적으로 행동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간수장들은 감옥 내에 이상이 발생하면 곧바로 보고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 연락도 최근에 끊긴 상태였습니다만……. 조금 전 라하브레아 학술원으로 보고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간수장 중 한 명이 '판데모니움, 이상 없음'이라 보고했다는군요.

테미스: ……! 그건 틀림없이 간수장 명의의 보고였던 거지?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네, 물론이죠. 일시적으로 통신이 끊겼던 적도 있기에 라하브레아 학술원에서도 면밀하게 확인했다고 들었습니다.

테미스: ……귀중한 정보, 고마워. 알고 싶었던 건 이게 다야.

라하브레아 학술원 직원: 그럼 전 실례하겠습니다. 판데모니움의 조사 허가는 아직 유효하지만 간수들을 너무 오래 방해하지 마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테미스: 변옥층에서 그런 사태가 일어났는데도 '이상 없음'이라니…… 남아 있는 두 간수장 중에 적어도 한 명은 흑막과 한패라는 뜻이로군. 서둘러 전송장치로 가자! 적이 무슨 생각으로 보고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판데모니움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테미스와 다시 대화)

테미스: 판데모니움에 숨어 있는 흑막이 굳이 간수장을 통해 학술원에 보고한 의도를 모르겠어. 하지만 상대가 움직임을 보인 지금, 이대로 에리크토니오스를 혼자 남겨둘 수는 없어.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감옥' 마법 유지에 실패하는 에리크토니오스)

에리크토니오스: 또 실패로군……. 마법진을 그릴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감옥'을 유지할 마력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의미가 없어. 언젠간…… 언젠간 가능해질 거라며…… 느긋하게 생각할 때가 아냐. 더 이상 어떠한 것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에리크토니오스: ……!? ……누구냐!

???: 후후…… 이런, 이런. 아무리 비효율적인 수련법이라 하더라도 열심히 매진하는 모습이니 칭찬을 해줘야 하나, 이거……. 하지만 사역마가 이렇게나 가까이 접근하는 걸 허용하다니 너무한걸. 높은 데만 바라보면 주위의 변화를 볼 수 없게 된단다!

에리크토니오스: 그 사역마…… 페넥스의 권속이었지? 그 마조는 지금 봉인되었으니, 그것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섬뜩한 사역마: 맞아,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너희가 쫓고 있는 '흑막'이야. 변옥의 제어권을 잃은 터라 이런 조무래기밖에 보낼 수 없더라고. 직접 오지 못한 무례함을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하나……?

에리크토니오스: 쓸데없는 소리 좀 작작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끌어내서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겠어!

섬뜩한 사역마: 후후후, 대화를 즐길 여유도 없는 건가.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유지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네 아버지…… 라하브레아가 가르쳤을 텐데?

에리크토니오스: 네 알 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떻게 그 말을 알고 있지……? 그 말은 기본적인 마법조차 습득하지 못해 짜증을 내던 어린 나에게 그 사람이 내뱉은 말이야. 모멸하는 눈빛을 보내면서…….

앗…… 그렇지……! 지금 이 얘기는 헤스페로스 간수장에게도 하지 않았어. 게다가 같은 말도 에둘러서 하는 습관…… 당신이었군? 설마 이 정도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어떻게…… 이런 장난질을, 어떻게! 당신…… '라하브레아'지!?

섬뜩한 사역마: 이런 이런, 이제야 깨달았나.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달아 봤자 이미 늦었어.

 

에리크토니오스: 윽, 이건!?

섬뜩한 사역마: 그래, 넌 언제나 그렇게 느려터졌었지. 뭘 하나 배우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우연히 도움을 얻어 도망칠 기회가 있었으면서도 물러날 판단조차 빨리 내리지 못하고 이런 사태를 초래했어. 마력만 모자란 게 아니라 지성도 부족한 놈이었다니…….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단다. 아무리 우둔한 너라도 이곳 판데모니움에서 이루어지는 가치 있는 실험의 '열쇠'가 될 수 있으니 말이야…….

에리크토니오스: 크헉…… 안됐군. 내가 당신의 기대에 부응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섬뜩한 사역마: 이번만큼은 도움이 되어줘야겠어. 게다가, 이건 말이야, 너의 소망이기도 하거든.

에리크토니오스: 내…… 소망이라고……!?

섬뜩한 사역마: 내게로 와라…… 그러면 모든 것을 말해주마. 그 분노도 증오도, 모두 진실을 모르기에 생겨난 어리석음에 불과해. 우리는 사실 모두 같은 소망을 갖고 있다.

에리크토니오스: ……당신…… 무슨 말을…….

 

(사역마가 시전하던 마법이 풀리고, 급히 달려오는 테미스와 모험가)

섬뜩한 사역마: 호오…… 또다시 방해가 들어오다니. 악운만큼은 참 세다고 해야 하나…….

에리크토니오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 놓으면…… 내가 들을 줄 알았나보지? 지금 나에겐 당신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

섬뜩한 사역마: 흠, 미숙하긴 했지만, 반신이 된 헤스페로스를 쓰러뜨릴 만하군……. 그렇다면 내 아들은 일단 놔두지. 먼저 노려야 할 것은 그쪽인 듯하니 말이야…….

(사라지는 사역마)

 

(에리크토니오스와 대화)

테미스: 상대의 목적은 대체 뭐지……?

에리크토니오스: 고마워……. 두 사람이 안 돌아왔더라면 난 끌려갔을 거야. 그리고…… 내 얘기 좀 들어봐. 사역마와 간수장, 그리고 창조 생물을 조종하는 흑막의 정체를 알아냈어!

연옥에서 그들은 만난다

테미스: ……지금은 에리크토니오스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자.

에리크토니오스: 사역마를 조종하는 자가 분명히 인정했어. 자신이 '흑막'이며 '라하브레아'라고……!

테미스: 흑막이 진행 중인 연구……. 그 목적은 인간과 창조 생물의 융합체인 반신 '헤미테오스'를 만드는 일이야. 그걸 실행하기에 가장 편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판데모니움의 장관이기도 한 라하브레아라는 건 이해할 수 있어. 14인 위원회, 학술원의 사명과 병행하며 몰래 했을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가 이렇게까지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할 것 같지가 않아. 너도 라하브레아와 면식이 있다고 했지? ……그가 흑막이라고 생각해?

 

(라하브레아를 떠올리는 모험가)

 

▷ 아직 모르겠어

 라하브레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테미스: 그래……. 넌 라하브레아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런 비정한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의 인품에 대해서는 나도 동감이야. 그 녀석은 사명을 위해서라면 뭐든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지.

테미스: 자신의 감정보다 사명을 우선시하는 자라는 생각은 들어. 하지만…… 수단을 전혀 가리지 않는, 그런 인물이었을까? 나도 라하브레아를 적지 않게 만나봤지만, 너희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어. 절대로 윤리관이 결여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해.

에리크토니오스: ……답을 알아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어. 다시 한번 판데모니움에 잠입해 흑막 앞까지 가는 거야.

테미스: 그래. 직접 대면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지. 그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 할지라도…….

에리크토니오스: 그럼 경계를 더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라하브레아…… 흑막도 이쪽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테고 남아 있는 간수장들도 적의 지배하에 있는 것 같으니까…….

테미스: 그래, 계단 앞으로 이어지는 '연옥'층도 간수장이 환경을 바꿔 놓았을 거야. 우리도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면서 가자. 난 에리크토니오스가 다시 공격당하지 않게 그의 옆에 있을게. 넌 최전방에 서줄래?

고마워…… 그럼 먼저 내 마력을 나누어줄게. 만약 우리가 흩어져서 네가 고립되어도 전투에 도움을 줄 환영을 소환할 수 있을 거야. 간수장이 적의 손에 넘어간 이상,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상대는 또 창조 생물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바꿔 버릴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의지할 건 너밖에 없어…….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는 날 가지고 어떻게 할 속셈이었을까. 실험 '열쇠'라는 말을 하던데…….

테미스: 사역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생각하면 흑막이 간섭하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연옥편 1 공략 후)

('감옥'을 발동시키는 테미스와 에리크토니오스)

테미스: 아무래도 여기는 독성 생물의 실험장인가 봐. 나와 에리크토니오스는 미리 경계하고 있어서 그런지 둘 다 같은 곳으로 이송되었어……. ……그보다도 간섭해온 흑막은 처음부터 널 첫 번째 표적으로 삼고 있었던 것 같아.

???: 각개격파 시도도 실패하다니…… 실로 흥미진진한 존재로구나.

 

붉은 가면의 남자: 내 아들이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다만…… 인사는 처음인 듯하군, 자기 소개는 필요 없으려나?

 

(스쳐지나가는 아씨엔 라하브레아의 모습)

 

▷ 네가 라하브레아인가

▷ 너 따위는…… 모른다

 심연의 사제……

 

붉은 가면의 남자: 그런 자리에 앉은 적은 없다. 난 14인 위원회의 일원…… 라하브레아다.

테미스: 미안하지만, 그리 간단히 라하브레아라고는 못 부르겠군. 일단은 우리 질문에…….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 그 전에…… 시간이 됐군.

 

테미스: 크헉……! 이건!?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 이런, 네 발밑에도 똑같은 함정을 설치해 놨는데 어찌 된 거지? 인체의 생명 에테르에 반응해서 작동하는 함정인데, 그게 발동하지 않는다는 건……. 체내 에테르 총량도 적고 구성도 다르군……. ……뭐, 큰 문제는 아니겠지. 직접 공격해서 존재 자체를 흩뜨려 버리면 되니까.

(분노하는 모험가)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 오호, 그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군. 날 쓰러뜨리면 에리크토니오스의 소망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아테나를 부활시키겠다는 염원 말이야…….

에리크토니오스: 어머니를!? 그게 무슨 소리야……!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 말했지 않느냐? 우리는 같은 소망을 갖고 있다고. 동료가 함께 있으니 이젠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테냐?

테미스: 기다려 봐, 에리크토니오스……!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게 있어. ……네가 라하브레아라면 어째서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지?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 이런…… 너무 괴로워서 헛소리가 나오나?

테미스: ……내 이름을 말해 봐라. 네가 라하브레아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 ……테미스라 부르는 건 들었다만, 너 같은 어중이떠중이한테까지 쓸 신경은 없어.

테미스: ……그 대답이면 충분해.

(함정을 해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테미스)

테미스: 내가 아는 라하브레아는 자신의 자리에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 마음을 우습게 아는 자를 용서할 수가 없군. 그의 자리를 넘보지 마라…… 이 가짜 녀석아!

에리크토니오스: 이, 이봐, 테미스. 최악의 관계였다지만 그래도 난 아들이야. 아버지를 못 알아볼 리가…….

테미스: 그래, 외모는 내가 아는 라하브레아와 똑같아. 하지만 그가 진짜라면 나를 '테미스'라고 부를 리가 없어……!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를 공격한다. 일행은 뒤를 돌아보며 놀란다.)

또 한 명의 라하브레아: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엘리디부스'.

 

(라하브레아라 칭한 남자 주변에서 연기가 걷히자, 가면이 드러난다.)

 

또 한 명의 라하브레아: 끔찍한 놈. 네가 그 모습을…… 그 가면을 쓸 자격은 없다.

 

에리크토니오스: 어……! 저 얼굴은 라하브레아의……?

라하브레아라 칭했던 남자: ……나 또한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싶었다. 라하브레아……!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자가 되고 싶은 나머지, 자신의 손으로 부인을 죽인 남자의 가면을 말이지!

라하브레아: 라하브레아의 자리는 혐오하면서 내가 가진 힘을 행사하다니. 그 모순은 네 녀석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열등감의 반증인가?

라하브레아라 칭했던 남자: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고 싶지만, 뻔한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정신을 잃지는 않았어.

헤파이스토스: 에리크토니오스, 기억해라. 난…… '헤파이스토스'다. 네가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야……!

(사라지는 헤파이스토스)

에리크토니오스: 뭐야…… 뭐라는 거야…….

라하브레아: 적의 진영에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 '엘리디부스'에게 상세한 이야기도 듣고 싶으니 일단 지상으로 돌아가자.

테미스: ……그래, 당신이 진짜 '라하브레아'로군.

(먼저 앞서나가는 라하브레아. 그를 잠시 바라보다, 따라 걸어가는 에리크토니오스)

테미스: 지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네게는 사죄를 해야 할 것 같아. 그의 말대로 난 '엘리디부스'야. 14인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조정자의 자리에 앉아 있지. 여기서 조사를 하기 위해 신분을 숨겨야 했어. 하지만 그런 사정이 너와 무슨 상관이겠어.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미안.

 

▷ 피차일반이야

▷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테미스인 건 변하지 않아

 

테미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나중에 차근차근 다 설명하겠지만, 결코 무슨 악의가 있어서 숨겼던 건 아니야, 정말이야. 일단 지금은 나에 대한 것보다도 먼저 확실하게 밝혀야 하는 일이 있잖아. 어찌 됐든 상세한 이야기는 지상에 돌아가서 하자…….

(떠나는 테미스. 모험가도 따라 걸어가려고 하나, 뒤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멀리서 울리는 목소리: 부디 그분을…… 살려…….

(잠깐 뒤돌아보고는 다시 걸어나가는 모험가)

 

(판데모니움 정문에서 테미스와 대화)

라하브레아: 그나저나…… 기묘한 녀석이 하나 있군. 너의 그 에테르는 대체 뭐지……?

에리크토니오스: …………어떻게 된 거야.

테미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난 원래 '엘리디부스'라 불리는 사람이고, 친구인…… 아젬과 함께 판데모니움의 이변을 감지했어.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잠입했던 거야. 왜 정체를 숨겼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뒤 라하브레아가 물어볼 테니까 그때 설명할게. 그보다 먼저…… 네 이야기를 해줬으면 해.

난 너와 아젬이 직접 만난 적조차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래도 너라는 존재를 우리 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아젬 본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권능을 가진 '별'이 세상에 하나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저 재미있어 했어. 그리고 네가 도움이 될 존재라고 진심으로 믿었지.

그리고 선대 아젬…… 베네스 님이 너와 비슷한 존재를 데리고 다녔다는 정보도 내가 개인적으로 널 믿게 된 이유기도 해. 베네스 님도 나처럼 조언자의 상징인 흰색 옷을 입는 분이시지. 그녀가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 사악한 존재일 리 없으니까.

그래서…… 네 정체를 파헤치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어. 그보다는 그저 너라는 한 존재와 직접 만나 겪어보고 싶었으니까……. 정체와는 상관없이 난 너라는 존재를 신뢰하고 있어. 일단 지금은 그 사실만 네게 말해두고 싶어.

마음마저 기생당한 간수장

테미스: 나도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은 반도 이해를 못 했어. 에리크토니오스와 함께 라하브레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 당신과 대화할 일이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런 소릴 할 때는 아니겠지. 판데모니움에 있던 '라하브레아'. 그 녀석이 마지막에 정체를 드러냈을 때 보여준 얼굴은…… 과거의 당신 얼굴과 완전히 똑같더군……! 당신은…… 왜 이 시기에 나타난 거지? 과거의 당신과 똑같은 얼굴인 그 '라하브레아'는 대체 누구냔 말이다……!

라하브레아: ……흠, 최소한의 설명은 해둬야겠군. 난 판데모니움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었다. 아젬과 엘리디부스가 원인을 찾으러 다니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지.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놔두고 있었지만……. 넌 보고를 전혀 하지 않는 데다…… 간수장 명의로 '이상 없음'이라는 허위 보고까지 들어오더군. 헤파이스토스가 왜 그런 어리석은 보고를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도저히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테미스: 헤파이스토스…… 과거의 당신과 똑같이 생긴 자.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녀석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는 거군? 14인 위원회라고 거짓말을 한 것만으로도 용서하기 어려워. 그런데 그런 존재를 네가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면……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라하브레아: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라하브레아라는 이름은 직책을 관장하는 '자리'의 명칭. 나의 본래 이름이 아니다. ……'헤파이스토스'. 내 '본명'을 쓰는 그 자는…… 말하자면 나의 반신이라 할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만……. 그 육체의 내면에는 내가 갖고 있는 지식에 욕망이나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넣었다.

테미스: 감정을 넣다니……? 아니, 그보다도…… 왜 그런 존재를?

라하브레아: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내가 아직 젊고 미숙하던 시절의 산물인데, 분명히 봉인해 둔 그것이, 어쩐 일인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리크토니오스: 부정적인 감정…… 어쩐지……. 당신이 '아테나를 죽였다'고 말할 때 헤파이스토스 얼굴에 상당한 증오가 드러나더군. 대답해, 정말로 당신이 아테나를 죽였어?

라하브레아: ……녀석의 말은 모두 망언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해 아주 오래 전에 제정신을 잃었을 터. 그 행동도 단순한 충동에 불과해. 그렇지만 깨어나 버린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녀석은 판데모니움을 감싼 결계에도 간섭하려 하고 있어. 세계에 재앙이 퍼진 뒤에는 이미 늦을 것이다. 판데모니움의 장관으로서 사태 해결을 위해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지하 시설의 모든 연구를 포기하고…… 감옥을 파괴하겠다.

에리크토니오스: 뭐? 헛소리 하지 마! 안에 남겨진 간수들이 모두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야!?

 

테미스: ……역시 당신은 그 길을 선택하는군.

라하브레아: ……불복하는가?

테미스: 우리의 사명은 인간과 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그리고 더 큰 피해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면…… 장관인 당신이 '소멸'이라는 수단을 선택할 거라는 예상은 했어. 하지만 에리크토니오스가 반발한 것처럼 관련된 자들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겠어? 나와 아젬은 평소에 늘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거든. 그렇기에 인간과 세상에게, 진정한 최선의 해결책은 무엇인지. 테미스, 개인의 입장에서 사태를 겪고 판단해 보고 싶었어.

라하브레아: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나는 판데모니움의 장관으로서 최악의 사태를 막을 책임이 있다. 엘리디부스로서가 아닌, 네 개인적인 감상에는 관심 없다.

에리크토니오스: 적당히 해! 모든 것을 흐지부지 없애버리겠다니…… 그런 수단이 정말 최선이라는 거야? 내 의문도 얼버무리고, 뭐든 제멋대로 행동하고! 테미스와 ○○이 지금까지 얼마나 힘겹게 싸워왔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라하브레아: ○○ …… 그나저나 넌 대체 누구지? 그 희미한 에테르를 보니 사람 같지는 않다만.

테미스: 이 사태를 해결로 이끌 '별'이야. 그녀가 있었기에 우리는 위험한 창조 생물을 처치하고 재봉인하는 수단을 선택할 수 있었어. ……그래, ○○, 넌 어떻게 생각해? 나처럼 외부인인 네가 냉정한 의견을 들려주면 좋겠어.

 

▷ 라하브레아의 의견은 믿을 수 없다

▷ 모두를 구출하는 길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테미스가 정식으로 조정을 해야 한다

 

에리크토니오스: 그래! '엘리디부스'가 우리 작전에 이점이 있다는 걸 판단해주면 돼. 라하브레아도 조정자의 말이라면 들어줄 거야……!

테미스: '엘리디부스'는 모든 면에서 공정함을 추구하는 자리야. 테미스라는 개인의 감정은 고려되지 않아……. 그래도 맡기겠다는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가령 감정을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네가…… 테미스가 이 사태를 지켜봐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현 상황을 잘 아는 자로서 최선의 수단을 판단해줄 거라 믿어.

 

테미스: ……그렇다면 조정자 엘리디부스로서 고하겠다. 현 단계에서는 시설 파괴와 간수 구출이라는 두 수단에 모두 이점이 있고,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듯이 먼저 창조 생물을 봉인함으로써 '연옥' 아래층을 공략해야 해. 당신은 그녀의 힘과 에리크토니오스의 노력을 몰라. 일단 실제로 보고 우리가 감옥을 평정하는 일이 가능할지의 여부를 분별해 줬으면 해.

라하브레아: 엘리디부스의 조정이라면 따르겠다만……. 너희들의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경우에는 판데모니움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바꿔도 괜찮지?

에리크토니오스: 그럴 일은 없어. 인정하게 만들 거야, 우리의 힘과 결의를…….

라하브레아: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성장하지 못하던 녀석……. 그렇게 자격 미달이던 네가 이젠 큰소리도 칠 수 있게 됐군.

에리크토니오스: 자격 미달이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어……! 그런 것도 모르는 당신과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난 잠시 머리 좀 식히고 올게.

(자리를 뜨는 에리크토니오스)

테미스: 꽤 화가 난 것 같아. 이 상태로 '연옥'층에 도전하는 건 좋지 않겠어. 에리크토니오스와 얘기해서 마음을 진정시켜주지 않을래?

라하브레아: ……혼자서는 대화도 뜻대로 안 되는군.

테미스: 지금까지 계획해왔던 것을 계속하는 거야. 나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테미스'로서 이 자리에 있으려고 해. 마음가짐일 뿐이지만…… 지금은 그 편이 더 좋아.

 

(에리크토니오스와 대화)

에리크토니오스: ……연옥으로 가기 전에 감사 인사를 해야겠네. 네 의견 덕분에 판데모니움을 파괴하지 않게 될지도 몰라. 

 

에리크토니오스: 수감되어 있던 창조 생물이 날뛰기 시작하자 간수들은 모두 판데모니움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려 필사적이었어. 바로 도망가고 싶었던 자도 있었을 텐데……. 안에 있는 간수들도 모두 판데모니움의 파괴를 바라지 않을 거야. 사명에 충실했던 그들을 반드시 구출해서 우리가 옳았다는 걸 증명할 거야……!  

그리고 이대로 헤파이스토스를 소멸시키면 '아테나의 부활'이라는 말의 진의도 알 수 없게 돼. 나도 헤파이스토스가 정상적인 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 발언이 모두 망언 같지는 않아. 지금까지 어머니, 아테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직무 중 사고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어. 주위 사람들도 마치 짠 것처럼 모두가 입을 열지 않았지…….

라하브레아가 어머니를 직접 죽이진 않았다고 해도 이번처럼 그냥 죽게 내버려뒀을 가능성은 있을 거야. 난…… 그 진실을 알고 싶어. ○○은 어때? 네가 아는 라하브레아도 타인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비정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자였지?

 

▷ 세계의 뒷무대에서 암약했어

▷ 이 시대의 그에 대해서는 잘 몰라

동료에게 빙의된 적이 있어

 

에리크토니오스: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잖아……! 그 동료도 매우 굴욕적이었을 거야.

……고마워, 네 이야기 덕분에 마음이 좀 진정됐어. 분노와 초조함을 안고 반발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나와 그 사람의 관계는 유소년 시절에 멈춰 있어.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라하브레아에게 지금 우리의 실력을 인정받아야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손으로 연옥의 지배권을 되찾자.

하지만 그러려면 이 자리에서 가장 연옥을 잘 아는 인물…… 분하지만, 라하브레아에게 정보를 알아낼 필요가 있어. 라하브레아는 네게 흥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았어. 어차피 난 상대해주지도 않으니……. ○○이 말을 걸어봐줄래?

에리크토니오스: 층이 다르면 업무상 최소한의 교류밖에 하지 않아. 아쉽지만 난 연옥의 간수장에 대해서도 잘 몰라.

 

라하브레아: 에리크토니오스에게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군. 게다가 엘리디부스에게 듣자 하니, 넌 아젬과도 관련이 있다고? 그 기묘한 에테르를 보아하니 누군가의 사역마는 아닌 것 같군. 물론 창조 생물의 이데아와도 달라……. 지금껏 너 같은 존재는 본 적이 없다. 내가 창조해낼 수 없는 존재까지 나타나다니……. 아무튼 아젬이 얽히면 이상한 일만 생긴다니까.

선대 아젬도 그랬지만, 별 전체를 생각한다면 버리는 게 마땅한 감정과 사상까지 소중히 여기지. 그러다 보니 뭐든 제멋대로 굴고……. 엘리디부스, 조금 전 네 말과 행동도 그래. 최근 아젬과 자주 어울려 다니는 것 같던데, 그 녀석의 영향을 받는 건 탐탁지 않아…….

테미스: 에메트셀크와 똑같은 말을 하네. 내 자리에 완전히 위반되는 행동을 할 생각은 없어.

라하브레아: 조금 전의 조정 같은 건 정말 엘리디부스로서 내린 결정인지 의심쩍지만…… 뭐, 됐다, 지금은 설교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너도 연옥에 대해서 알고 싶겠지. 지배권을 빼앗긴 상태이긴 하나…… 나라면 어느 정도 이곳에서도 내부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어.

테미스: 역시 판데모니움의 장관답네. 연옥에는 아직 창조 생물이 남아 있어?

라하브레아: 아니, 생물의 기운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헤미테오스인지 뭔지를 만드는 실험에 사용되었거나 연옥보다 더 깊은 최하층으로 이송되었겠지. 그런데…… 헤파이스토스 녀석, 이쪽을 경계해서 최대급 장애물만 배치한 모양이더군.

 

라하브레아: 생물의 기운이 딱 하나 느껴져. 예전과 느낌이 상당히 달라진 것 같은데…… 이 기운은 아마도 연옥의 간수장 '헤게모네'가 맞을 거다. 마술에 능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 하지만 내가 아는 그녀의 기운과 다른 점도 많아. 마치 무언가가 기생하고 있는 듯한데…….

 

에리크토니오스: 그 말인즉슨 헤게모네도 반신 헤미테오스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군. 이번에는 반드시 간수장을 적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켜주겠어……! ○○, 테미스, 너희의 힘을 빌려줘. 우리 손으로 반드시 헤게모네를 봉인하자.

라하브레아: 동료가 있으니 꽤나 기고만장하군. 너희의 힘을 실컷 보여줘 봐라.

 

(각자 등을 돌리고 서는 에리크토니오스와 라하브레아.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는 테미스와 모험가)

라하브레아: 헤게모네는 이지적이고 논리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헤파이스토스의 꾀임에 넘어갔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역시…….

테미스: 작전은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어. 넌 헤게모네와의 전투를 맡아줘. 나와 에리크토니오스가 '감옥' 마법을 쓸게.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 옛날보다도 더 융통성이 없어졌군……. 아무튼 일단 우리 실력이나 보여주자고. 그리고 간수들을 해방시켜 모든 진실을 밝혀내자.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연옥편 2 공략 후)

('감옥'을 발동시키는 테미스와 에리크토니오스)

 

(에리크토니오스와 대화)

테미스: 이해는 되지만…… 에리크토니오스가 굉장히 흥분한 상태야.

라하브레아: 헤게모네가 봉인된 건 여기에서도 감지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심하게 농락당한 것 같더군.

에리크토니오스: 좋았어! 헤스페로스 때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무사히 간수장을 봉인했어! 이제 라하브레아도 우리를 인정할 거야! 

변해버린 간수장

에리크토니오스: ……선언한 대로 우리가 해냈어. 연옥을 통치하는 간수장 헤게모네를 봉인했다고. 이제 우리 계획이 탁상공론이 아니란 걸 알았겠지?

라하브레아: 그래. 난 의견이 대립한다고 해서 상대의 행동을 정당하게 평가 못할 만큼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다. 에테르 총량도 적고 창조 마법도 구사하지 못하는 자가 나의 예상을 훨씬 능가하는 전투 능력을 보여주다니, 실로 흥미진진한 볼거리였다.

에리크토니오스: 그럼 앞으로도 우리 계획을…….

라하브레아: ……하지만 인원 구성에 큰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걸리적거리는 짐을 데리고 다닐 수야 없지. 이 계획에서는 한 명을 제외할 필요가 있다.

에리크토니오스: 걸리적거리는 짐이라고?

라하브레아: 간수라면서 아직까지 단독으로 '감옥'도 구사하지 못하다니. 적은 인원수로 공략하는 만큼 개개인이 책임을 완벽히 완수해야 한다. 욕망만 크고 제 역할도 못하는 사람은 필요 없단 말이다.

에리크토니오스: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분명 성과가 나올 거라고, ○○과 테미스가 내게 가르쳐 주었어.

테미스: ……누구 편을 들 생각은 없지만, 그의 말이 맞아. 서로의 역할을 보완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나도 판데모니움에 오고 나서 알게 됐어.

에리크토니오스: 그리고…… 욕망을 갖는 게 뭐가 나빠! 욕망이 있기에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고 행동을 일으키는 활력도 생기는 거잖아?

라하브레아: 그럼 말해봐라, 네 욕망은 무엇이냐.

에리크토니오스: 헤파이스토스를 잡는 거다. 녀석을 봉인해 사건이 해결되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어. 물론 판데모니움을 통째로 파괴하면 손쉽고 확실하게 녀석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많은 간수들이 희생될 거야. 뿐만 아니라…… 녀석이 말한 '아테나의 부활' 방법을 영원히 물어볼 수가…….

라하브레아: ……결국 넌 그게 목적이로군. 역시 넌 이곳을 떠나줘야겠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판데모니움에 나타나지 마라. 너희 계획에 응한다 하더라도…… 헤파이스토스는 소멸시켜야 한다. 아테나의 부활이라는 경거망동도…… 절대 용납되어선 안 돼.

생명의 순환,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이치다. 누구의 어머니였든 아테나의 혼은 이미 명계로 돌아갔다. 아니, 이미 새로운 생명이 되어 여행을 떠났을지도 몰라. 알겠나……? 헤파이스토스의 말이 얼마나 헛된 소리인지. 가령 육체를 되살린다고 해도 그곳에 네 어머니의 혼이 깃들어 있을 리 없어.

에리크토니오스: 녀석이 그 이론을 능가하는 주술을 고안해 냈다면 어쩔 건데! 상대는 당신과 동등한 지식과 기억을 가진 존재야. 세상의 이치도 진저리 날 만큼 이해하고 있을 테니……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부활을 입에 담지는 않았을 거라고!

라하브레아: 나와 완전히 동일한 존재는 아니라고 이미 설명했을 텐데. 자신의 욕구 때문에 인간을 도구로 이용하는 자가 제대로 된 수단으로 부활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에리크토니오스: 그럼…… 제대로 된 수단이 아니라면 어머니를 부활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겠군……?

라하브레아: ……네 욕망을 위해서라면 희생도 상관없다는 말투구나. 간수들을 구해야 한다던 너의 주장은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감추기 위한 어리석은 자의 궤변이었나?

테미스: 그렇게 말하면 상대를 몰아세울 뿐이잖아. 지금 이야기해야 할 건……. 

 

에리크토니오스: 이 별을 위한 일이랍시고 혼자만 바른 길을 가겠다고 부인을 죽여버린 자야말로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뭐겠어!

 

에리크토니오스: 크헉…… 또 들려. 머릿속에 울려, 그 목소리가……! 내가……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사람은 라하브레아가 아니라, 헤파이스토스라고!

 

에리크토니오스: 난 어머니를 사랑해! 그러니…… 이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따르겠어!

멀리서 울리는 목소리: ……안 돼요! 에리크토니오스, 그 목소리를 따르면……!

에리크토니오스: 미안.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쳐줬는데…… 내겐 무리였어.

(사라져버리는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와 대화)

테미스: 헤파이스토스……. 한 번의 실패를 반성 삼아 더 확실한 책략을 꾸미고 있었군.

라하브레아: ……헤파이스토스가 한 수 위였다는 걸 인정해야겠군. 지금 에리크토니오스는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어. 에리크토니오스는 나와 대화하면서 계속 감정이 격앙되었다. 증오와 분노 같은 감정을 계기로 발동하는 정신적인 속박을 걸어 놓았을 테지. 아까 그 모습으로 보아 에리크토니오스는 자신이 주술에 걸린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테미스: 헤파이스토스가 정신 주박 술식에 능하다면 간수장들이 그의 손에 넘어간 이유도 설명이 되네. 헤스페로스가 보였던 라하브레아에 대한 집착이나 에리크토니오스에 대한 질투심도 속박으로 인해 증폭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에리크토니오스가 떠나는 순간 누군가의 사념이 느껴지지 않았어?

(이야기하는 모험가)

테미스: 너도 느꼈구나. 이쪽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걸 보니, 남아 있는 간수 중 누군가가……?

라하브레아: 그게 누가 됐든 경고를 듣기도 전에 에리크토니오스의 감정을 자극시켜 버린 건 바로 나다.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뒤처진 셈이다. 내가 그 녀석의 욕망을 절대 용납하지 못할 거란 것까지 헤파이스토스는 예상하고 있었겠지. 이렇게 되면…….

테미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면 연옥의 지배권도 우리가 빼앗아 올 수 있고 남은 최하층을 공략하면 적의 본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에리크토니오스의 감정도 속박 때문에 증폭된 거잖아. 진심으로 반발한 게 아니야……! 연옥의 간수장은 봉인에 성공했어……. 라하브레아, 최하층의 정보를 가르쳐줘. 그곳에 분명, 마지막 간수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라하브레아: 최하층…… 그곳의 이름은 '지옥'.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는 건 간수장뿐만이 아냐. 헤파이스토스는 '지옥'에 대량의 함정을 설치한 것 같다. 지금 상태로는 발을 내딛는 일조차 불가능할 테지.

테미스: ……그렇다면 우리 쪽 비장의 카드는 ○○이 되겠네. 우리와는 육체의 에테르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그녀에게는 헤파이스토스가 설치한 함정이 발동하지 않았어. 조금 전에 판명된 사실이니 그쪽도 아직 대책을 세우진 못했을 거야.

라하브레아: 그럼 빨리 공격을 시작해야겠군……. 이 녀석에게 간수장을 쓰러뜨릴 만한 실력이 있다는 건 헤파이스토스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테미스: 동감인데…… 그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우리는 왜 헤파이스토스가 그토록 에리크토니오스를 원하는지, 그 이유를 몰라. 그리고 당신이 왜 그렇게까지 어머니를 향한 에리크토니오스의 마음을 완강하게 부정하는지도……. 죽은 자의 부활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건 알겠지만, 당신은 아테나라는 인물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적의 의도를 추측할 수 있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겠어?

라하브레아: 그 진실은, 나 이외의 자에게 가시가 될 것이다.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야…….

 

▷ 갈등은 마음을 전달할 기회를 빼앗는다

▷ 입을 다무는 건 에리크토니오스 때문?

 그 생각이 에리크토니오스를 몰아세운 거다

 

라하브레아: 넌…… 무슨 말을……. ……아니, 네 말이 맞다. 그래서 에리크토니오스가 헤파이스토스의 유혹에……. 알겠다, 진실을 말해주지. 하지만 지금은 간수장을 쓰러뜨리는 일이 우선이다.

 

라하브레아: 마지막 간수장…… 이름은 '아그디스티스'라고 한다. 판데모니움 설립 초기부터 여기에서 일했고, 간수장 중에서도 가장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지. 헤파이스토스도 아그디스티스를 빼앗기면 끝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발판조차 없는 단절된 공간에 숨겨두고 있어. 하지만…… 너의 존재가 모든 계산을 흔들어 놓았지. 에테르가 희박한 너라면 직접 전송 마법으로 아그디스티스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거다.

테미스: 우리도 최대한 접근해서 상황을 살펴볼게. 너와 적의 위치도 알고 있고, 내부를 감지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싸우기 위한 발판을 외부에서 생성하는 것과 환영 소환에 필요한 마력을 보내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어. 봉인하는 방법은 좀 더 생각해야겠지만……

라하브레아: 봉인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이미 아그디스티스의 것이 아냐. 조금 전 헤게모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본래의 그녀와는 다른 존재로 재창조되어 있어. ……이렇게까지 사악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면 혼을 명계로 보내주는 일만이 유일한 구원책이다.

테미스: 전투를 지켜보면서 연옥의 지배권도 장악해 둘게. 그러면 드디어 헤파이스토스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게 돼.

라하브레아: 헤미테오스의 완성도가 더 높아진 것처럼 느껴지는군. 헤파이스토스의 연구가 완성에 가까워진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어.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연옥편 3 공략 후)

테미스: 네가 아그디스티스를 쓰러뜨린 직후, 이 공간으로 통하는 마력의 흐름이 생겼어. 마치 우리를 부르듯이.

라하브레아: 이렇게나 치밀하게 단절된 공간에 마력의 흐름을 통하게 하려면 간수장의 힘이 필요하다. 즉……

 

아그디스티스: 이 '지옥' 전체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제게 남은 힘은 이게 다예요. 오랜만입니다, 라하브레아 님.

라하브레아: 힘이 소모된 탓에 정신 주박에서 풀려난 것이냐. 간수장 아그디스티스여.

아그디스티스: 헤파이스토스의 정신 주박은 마음에 숨겨진 감정을 자극하는 것. 따라서 한 번 걸리면 저항이 아예 불가능하지만…… 저는 어떠한 이유로 인해 희미하게 정신이 남아있었어요. 지금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에요. 정신을 속박당해, 헤파이스토스에게 저항하지 못할 때도 희미한 이성으로 미력하게나마 저항을 시도하고 있었어요.

테미스: 라하브레아가 이곳에 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간수장의 보고. 그건, 당신이……!

아그디스티스: 당신도…… 제 목소리를 몇 번인가 들어 주셨지요. 목소리가 전해졌다는 희망도 이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건 이별을 고하기 위함이 아니에요. 더 이상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신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라하브레아 님, 부디 용서해 주세요. 헤파이스토스가 에리크토니오스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이분들은 아셔야 해요. 그리고…… 당신이 아들을 생각하는 진심을요. 

 

테미스: 헤파이스토스……. 아니, 가슴의 가면을 보니, 라하브레아인가…….

아그디스티스: 라하브레아 님께선 아테나 님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기억과 감정 일부를 헤파이스토스로 분리한 뒤 봉인하셨죠. 그 직후의 제 기억이에요.

재현된 아그디스티스: ……그럼 에리크토니오스에게는 진실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세요?

현된 라하브레아: 나에게서 떼어낸 '반신'은 이미 봉인했어. 진실을 아는 나와 네가 모든 것을 무덤까지 가져가면 끝날 일이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성인이 된 후엔 서로 대등해야 한다. 하지만 아테나는 잘못된 교육으로, 별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집착을 주입시켰다. 지금 에리크토니오스는 사랑이라 믿는 감정 때문에 어머니를 믿고 따르고 있어. 그런 녀석에게 이 진실은…… 지나치게 가혹해.

재현된 아그디스티스: 하지만 결국 남는 건 믿고 따르던 어머니를 잃는다는 현실뿐. 그 와중에 당신까지 입을 다무신다면 쓸데없는 의심이 생길 테고 나중에는 에리크토니오스가 당신을 미워하게 될 가능성도…….

재현된 라하브레아: 아테나는 아들을…… 에리크토니오스의 혼을 없애려 했단 말이다! 육체를 실험에 이용하기 위해서……. 만약 섣불리 사실을 말했다가는 모든 원흉이 자기라고 생각할 거다. 그렇다면, 설사 나를 증오하게 되더라도 한 인간으로 자립해서 별을 위해 사는 편이 나아.

테미스: 아테나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 아들을 실험체로……? 그것이 라하브레아가 숨겨온 진실…….

아그디스티스: ……라하브레아 님은 해결을 위한 강한 책임감은 말씀하셔도 이런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죠? 제가 해드린 이야기는 진실의 일부분에 불과해요. 남은 이야기는 라하브레아 님이 직접 이분들과…… 그리고 에리크토니오스에게 말해 주세요.

라하브레아: ……수고 많았다. 

 

아그디스티스: 자신을 희생해 별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당신의 모든 열정을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에테르가 되어 흩어지는 아그디스티스)

라하브레아: 간수장이 패배했다는 건 헤파이스토스도 감지하고 있을 거다. 그의 간섭을 받기 전에 지상으로 돌아가자. 녀석과의 결판은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뒤에 해야 할 테니.

 

(판데모니움 정문에서 라하브레아와 대화)

테미스: 헤파이스토스가 정신 주박을 걸 때 이용한 건 에리크토니오스가 아버지에게 갖고 있는 강한 증오심이었어……. 그건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에 기인한 것이었지. 하지만 그 사랑은 어머니에 의해 의도적으로 주입된 거였어. 실험체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렇게 해야 실험체로 다루기 쉽기 때문에…….

라하브레아: 아그디스티스 녀석. 나에게 언질도 없이 묻어둬야 할 과거를 타인에게 보여줄 줄이야……. ……너는 볼수록 기묘한 녀석이구나. 네가 마지막 상대였다는 사실이 아그디스티스에게는 행운이었을 거다.

헤파이스토스틑 소원을 외친다

라하브레아: ……조금 전에 본 광경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보면 돼. 아테나는 인간과 창조 생물의 융합이라는 연구에 빠져 있었다. 에리크토니오스를 간수로 채용한 것도 애정 때문이 아니야. 아테나는…… 아들을 조종하기 쉬운 실험체로밖에 보지 않았다.

테미스: 그게 당신이 계속 숨겨 왔던 진실……. 그래,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한 에리크토니오스에게는 견디기 힘든 배신으로 여겨지겠네.

라하브레아: 그리고 헤파이스토스는 아테나의 연구를 물려받아 헤미테오스를 만들어냈지. 어떤 수를 쓸 생각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결국 그것이 녀석의 최종 목적인 '아테나의 부활'로 연결되겠지.

테미스: 지금은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해. 나머지는 에리크토니오스와 함께 들을게. 그것이 아그디스티스의 소망이기도 하니까.

라하브레아: ……그렇게 하마.

테미스: 헤파이스토스는 더 이상 판데모니움 내부의 환경을 바꿀 수 없어.

라하브레아: 이제 녀석이 잠복하고 있는 지옥의 최심부…… 아테나가 만든 실험구획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테미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겠지. 안전한 침입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나의 모든 마력과 신경을 집중해야 해……. 그녀에게 환영을 불러내기 위한 마력을 보내는 역할은 라하브레아…… 당신에게 부탁해도 될까?

라하브레아: ……알았다. 어차피 난 지옥 내부에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테니. 하지만 헤파이스토스의 숨통을 끊는 역할만큼은 내가 하게 해다오. 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다…….

테미스: 한 번 더 확인할게. 헤파이스토스를 한 번 봉인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거지?

라하브레아: 헤파이스토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나의 기억과 달랐다. 스스로도 손을 대서 자신을 '반신'으로 만들었을 테지. 육체가 변질된 지금, 다시 예전처럼 봉인이 가능하다는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 봉인을 선택하는 바람에 이 참상이 일어나지 않았나. 같은 과오를 반복할 생각은 없다……. 녀석을 완전히 소멸시킬 생각이다.

테미스: 그럼 헤파이스토스의 근거지로 가는 길을 열게……. 두 사람 모두, 잘 부탁해……!

테미스: ……자, 이제 결전이야. 잘 부탁해……!

라하브레아: 헤파이스토스는 아테나의 연구를 재현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아테나가 몸체로 선택한 에리크토니오스의 존재가 연구를 완성시키는 '열쇠'로서 꼭 필요한 거다.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연옥편 4 공략 후)

라하브레아: 그때 봉인으로만 끝냈던 것이 나의 실책이었다. 모든 것을 끊어내기 위해선 너를 소멸시켜야…….

 

헤파이스토스: 여기서…… 끝날 것 같으냐!

라하브레아: 아직도 이 정도의 힘이……!

헤파이스토스: 라하브레아이길 선택한 네가 갖다버린 쓰레기라 해도, 내겐 양보할 수 없는 긍지가 있다……. 

 

헤파이스토스: 네가 라하브레아라면 난 헤파이스토스로서 모든 것을 해낼 것이다……. 아테나의 소망도, 에리크토니오스의 소망도…… 전부 다!

라하브레아: 소망을 이루겠다고 말하면서 아들을 방패로 삼다니 촌극도 이런 촌극이 어디 있나. 누구의 소망이든 이뤄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아테나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세계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 그리고 에리크토니오스는……. 에리크토니오스는 자신의 소망이 어떤 사태를 일으킬지 모르고 있다. 그걸 전달하지 않고 정신 주박으로 조종하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인가?

에리크토니오스: 나의…… 소망……?

라하브레아: 헤파이스토스이자 자칭 에리크토니오스의 아버지라는 자가 어째서 속박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거지? 너의 말은 어차피 이기심을 정당화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아.

헤파이스토스: 아테나는 에리크토니오스를 원했어. 에리크토니오스도 아테나와 재회하길 바라고 있고. 그렇다면 그 소망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라하브레아: ……아테나가 에리크토니오스를 원했던 건 실험에 꼭 필요한 몸체였기 때문이다. 넌 말로만 에리크토니오스를 위한 거라 하고 머릿속으로는 아테나의 목적을 이루는 것만 생각하고 있잖나.

난 아테나를 내 손으로 처분했을 때 앞으로는 더욱더 이 별을 위해, 사명을 지키며 살아가리라 맹세했다. 그렇기에…… 내 개인의 감정은 묻어두고, 아들을 이끄는 아버지의 역할마저 포기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네가 뭐라고…… 멋대로 내 책임을 가져가겠단 말이냐! 나와 아테나의 '부정적 감정'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네가!

에리크토니오스: 나의 소망…… 어머니는 나를……. 그럼 난…… 뭘 믿어야……?

 

라하브레아를 믿어!

▷ 자신의 마음을 따르도록 해!

돌아와, 에리크토니오스

 

에리크토니오스: 그래, 나, ○○에게 사과해야만 해……. 테미스한테도……. 아테나…… 어머니는 날 사랑해서…… 아니면……. ……라하브레아, 당신은……. 

 

에리크토니오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헤파이스토스: 뭐, 뭐야……! 설마 나의 정신 주박을 깨뜨린 거냐!?

에리크토니오스: 모르는 것투성이야. 하지만 ○○의 말은 확실히 들렸어……. 그리고…… 전해졌어……. 같은 목소리일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아닌……. 그 사람의 말이!

 

헤파이스토스: 아니……! 실력이 한참 모자란 네가 '감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에리크토니오스: 이 녀석, 창조 생물과는 비교도 안 돼……! 조금만 더……!

 

(에리크토니오스를 거드는 라하브레아)

헤파이스토스: 에리크토니오스가 어떻…… 어떻게!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감옥'이 완성되고, 그 자리에는 크리스탈이 남겨진다.)

 

에리크토니오스: 이제 더 이상 자격 미달이라 불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앞으로 걸어가 크리스탈을 줍는 라하브레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라하브레아: ……흠. 마침내 해냈구나, 아들아.

(놀라 고개를 드는 에리크토니오스. 미소짓는 모험가)

 

(라하브레아와 대화)

에리크토니오스: 으으……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 거야…….

라하브레아: 헤파이스토스를 봉인한 크리스탈은 내가 챙겼다. 그나저나 에리크토니오스 녀석, 정신을 차리자마자 발동시킬 만큼 '감옥' 마법을 숙지한 상태였다니. 이쪽도 다 생각이 있는데 멋대로 행동하기는. ……그래도 혼자 '감옥'을 발동시키기까지 한 건 높이 평가해줘야겠군.

판데모니움의 진실

라하브레아: 정신 주박은 완전히 풀렸다. 육체적으로도 더 이상 문제는 없는 듯하군.

테미스: 판데모니움의 결계에 대한 간섭이 끊긴 데다 헤파이스토스의 기운이 사라졌길래 뛰어왔어. 소멸……과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그렇구나.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봉인을 선택했다는 건 에리크토니오스가 그게 최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겠지.

에리크토니오스: 상황도 모르고 그냥 무의식 중에 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그 녀석은…… 원래 그렇게 봉인되어 있었어?

라하브레아: 헤파이스토스는 내게서 분리해낸 기억과 혼의 일부…… 결국 육체를 지니지 않은 에테르에 불과해. 그렇다면 크리스탈에 봉인하는 것이 최선이다.

테미스: ……헤파이스토스라는 존재, 그리고 아테나의 죽음에 대해, 이제는 가르쳐주지 않겠어?

에리크토니오스: 어렴풋이 들리긴 했어. 어머니가 날 어떻게 다루려고 했는지……. 그러니 알려줘.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아테나는 진정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인지.

 

라하브레아: 그녀는 라하브레아 학술원에서도 촉망받던 재원이었다. 내버려두면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에만 몰두할 정도로 뼛속까지 연구자였지. 그렇게 밤낮없이 탐구에만 매달리던 아테나는 어느덧…… '생명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생물은 만들어도 혼은 만들어내지 못해. 그리고 변신은 가능해도 인간의 껍데기를 깰 수는 없지……. 그 한계를 넘는 존재가 되겠다는 몽상에, 그녀는 빠지기 시작했다.

테미스: 자유자재로 혼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존재, 즉 '신'의 경지에 이르려고 했던 것인가……. 그런 장대하고…… 위험한 소망을…….

에리크토니오스: 생각에 그치거나 말로만 그랬다면 단순한 몽상에 불과했을 텐데. 하지만…… 아테나는 그렇지 않았나 보네.

라하브레아: 난 라하브레아 학술원을 이끄는 입장에서 아테나와 종종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을 토론하곤 했다. 혼의 창조 같은 건 창조학적 명제 중 하나니까……. 하지만 머릿속으로 실험을 거듭하다…… 난 알아내고 말았다. '인간과 창조 생물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금단의 술식을 말이다……. 아테나는 내 발상을 놓치지 않았지. ……나에게 접근해 그 술식을 알아내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에리크토니오스: 설마 내가 태어난 것도…….

라하브레아: 어리석게도 난 아테나의 진의를 눈치채지 못했어. 판데모니움 건설 당시, 그녀가 장관 자리를 원할 때도 말이지. 아테나는 우수한 연구자였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장관으로 임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실험장'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에리크토니오스: 아테나는 여기서 '인간과 창조 생물의 융합'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그걸 알게 된 당신이…… 그녀를 죽인 거군?

라하브레아: 실험장의 존재를 눈치챈 나는 곧장 감옥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아그디스티스는 지옥의 방에 남겨두고 아테나와 둘이서……. ……여기서부터는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거라. 

 

에리크토니오스: 아테나…… 라하브레아…… 그럼 저건 나인가……?

재현된 라하브레아: 연구의 효율을 생각해서 시설을 엘피스에 병설하고 싶다면 그쪽의 직원과 간수들을 서로 구분할 수 있도록 우리는 가면을 벗고 일해야 한다고……. 판데모니움 설립 시에 내가 내렸던 지시다.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건 반항의 표시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재현된 아테나: 글쎄, 뭐라 설명하는 게 좋을까……. 그나저나 당신이 이곳을 다 찾아오다니. 판데모니움 설립 이후로 처음 아니야?

재현된 라하브레아: 아그디스티스와 날 끝까지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에리크토니오스를 풀어줘.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어. 하지만 만약 당신이 에리크토니오스에게 손을 댄다면 그땐 내가 당신을…….

재현된 아테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 손에 죽는 거라면 바라던 바야. 하지만…… 기왕이면 나의 진의를 알고 난 다음에 그래 주겠어?

재현된 라하브레아: ……연구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는 뜻인가.

재현된 아테나: 나의 이 마음을 알게 된다면…… 그만둘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재현된 라하브레아: 개인의 마음은 아무래도 좋다. 그 행동이 과연 별에게 옳은 일인지가 중요하다…….

재현된 아테나: 그건…… 잘 알고 있어. 당신도 학술원을 비우면서까지 그런 뻔한 소리를 하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알고 싶지 않아? 학술원의 우수한 연구자이자 자신과 아이까지 만든 상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작했는지. 

 

재현된 아테나: 가르쳐줄 테니 손을 줘 봐……. 말로는 부족한, 궁극의 상호 이해를…….

테미스: 설마 당신들, 혼의 융합을?

라하브레아: 그래. 혼의 경계를 넘어 두 개의 혼을 뒤섞는 것. 아테나는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게 내어주었다. 그리고 이때의 나는 아테나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과연 그녀는 나를 사랑했을까…….

 

재현된 아테나: 나의 생각과 소망은 그대가 되고――

재현된 라하브레아: ――그대는 내가 되리니. 

 

재현된 아테나: ……어때, 느껴져? 이것이 나의 소망…… 나의 모든 것…….

재현된 라하브레아: 아아, 이토록…… 이토록 순수한…….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기 위해…… 인간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에 이르려는 거군……! 이토록 무결하고 순수한 지적 탐구라니……! 

 

재현된 라하브레아: 타인에 대한 마음, 별에 대한 마음은…… 조금도 없어……!

 

재현된 아테나: 유감이야……. 하지만 당신은 이제 알아 버렸어. 내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의 모든 연구 성과를……. 아무리 어떤 수로 기억을 지운다 해도…… 생명의 신비를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는 당신의 혼에 깊게 새겨져 그 속에 뿌리를 내려 당신 스스로의 욕망으로 변할 거야.

 

재현된 라하브레아: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혼을 통째로 분리해내면 돼. 어두운 마음도, 연구에 관한 지식도……! 이 일은 나의 약한 마음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니 약한 마음을 모두 나에게서 분리해낸 다음, 앞으로는 한층 더 엄격하게 나 자신을 다스리겠다. 

 

재현된 라하브레아: 라하브레아의 자리에 걸맞은 자가 되기 위해……!

라하브레아: 이렇게 나는 아테나의 혼에 오염된 내 혼을 따로 분리해서 크리스탈 속에 봉인한 것이다. 설마 그것이 훗날 육체를 얻어 헤파이스토스라는 이름으로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만.

테미스: 어쩜 그렇게 위험한 일을……. 기억의 개조라면 몰라도 부분적이라지만 혼을 분리하다니, 자신의 존재를 다시 만드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잖아.

라하브레아: ……덕분에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14인 위원회 중에서도 오래 알고 지낸 이들이 상당히 수상하게 보더군. 특히나 이게요름과 에메트셀크가…….

테미스: 당연해……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라고.

에리크토니오스: ……분리해낸 혼을 처분하지 않고 봉인한 것은 언젠가는 유익한 지식을 되찾을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어?

라하브레아: 물론 그 가능성도 뇌리를 스쳤지만…… 혼의 분리는 나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분리 후, 만약 내 혼에 이변이 생긴다면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해두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계산 착오였던 셈이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테나는 내가 혼을 분리하리란 것까지 미리 내다보고 몰래 '반신'의 몸체를 남겨 놓았던 거겠지.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행동을,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테나의 욕망에 떠밀려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이 헤파이스토스가 스스로 궁극적인 존재가 되려고 하지 않은 이유다. 어디까지나 부활한 아테나가 연구를 완수하길 바라고 있었지. ……말은 그래도 사실 나와 닮은 부분도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고 타인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의 가장 큰 과오이자 공통점일지도 모르겠군.

에리크토니오스: 그런데 내가 정신 주박을 받고 있을 때 나에게 뭘 전하려 한 거야? 이것이…… 라하브레아의 본심이라는 것?

 

▷ 그건 스스로 판단해

▷ 진실을 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다음엔 네가 마음을 전달할 차례다

 

에리크토니오스: ……하나만 알려줘. 당신이 진실을 숨겼던 이유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내 입장에서,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내가 알고 있는 라하브레아는 절대 그런 판단을 할 사람이 아니야. ……아직 믿겨지지가 않아.

라하브레아: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믿고 안 믿고는 네가 결정한다. 나의 생각을 네가 판단하면 돼.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라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무엇보다 우선시해. 타오르는 불꽃처럼 끝까지 혼자 돌진하는…… 그런 사람이야. 어차피 당신은 지상으로 돌아가면 예전의 '라하브레아'로 돌아가겠지. 그러니 이 지옥의 밑바닥에서…… 지금 말할게. ……고마워, 헤파이스토스.

 

(에리크토니오스와 대화)

라하브레아: 해야 할 말은 전부 다 했다. 이제 두 번 다시 사적인 감정 때문에 길을 잘못 선택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마.

테미스: 헤파이스토스는 라하브레아를 사칭한 가짜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일부였구나……. 내가 아는 그는, 무엇보다도 사명을 우선시하는 인물이야. 생각해 보니 그런 성격도 어쩌면 '부정적 감정'을 분리했기 때문에 더 강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네.

에리크토니오스: ……듣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들었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일단은 정문으로 돌아가자.

 

(판데모니움 정문에서 대화)

라하브레아: 아테나는 에리크토니오스를 최고의 몸체라고 생각했다. 그런 존재를 실험에 이용하려고 했던 걸 보니 헤파이스토스의 연구도 완성 직전이었을지도 모르겠군…….

테미스: 지옥의 지배권도 완전히 되찾았어. 하지만 모든 것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으려면 고생 좀 하겠는걸…….

에리크토니오스: ○○에게는 사과해야 할 것 같아……. 정신 주박이 발동한 건 내 마음이 미숙했기 때문이야. 나 때문에 고생하게 만들어서…… 미안. 그리고 감사 인사도 할게……. 너와 테미스가 신경 써 준 덕분에 라하브레아…… 아버지의 진의를 알게 되었어.

테미스: 그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건 나에게도 굉장히 의외였어. 도대체 아젬은 어디까지 꿰뚫어보고 있었던 걸까…… 다음에 만나면 따져봐야겠어.

라하브레아: ……엘리디부스. 현재 판데모니움의 지배권은 모두 네가 갖고 있다. 미안하지만, 아직 귀환을 허락하기 힘들다.

테미스: 물론이야, 남은 간수들도 해방하고 판데모니움을 기존의 모습으로 돌려놔야지.

라하브레아: 지옥에 있던 실험장을 사용하면 반신 실험에 이용된 자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 거다……. 나도 당분간 여기에 머물도록 하지.

에리크토니오스: 그런데 헤파이스토스의 행동에 몇 가지 의문이 남아. 내 육체가 연구의 '열쇠'라는 구체적인 이유도 모르겠고, 결국 아테나를 부활시키는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어.

라하브레아: ……몰라도 된다. 조사하려고도 하지 마라. 인간과 창조 생물의 융합이라는 부정한 수법은 애초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헤파이스토스를 봉인한 크리스탈도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완전히 파괴할 생각이다.

테미스: ……당신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지. 그나저나 헤파이스토스의 크리스탈을 보니 네가 갖고 있던 크리스탈이 직감적으로 떠올랐어. 색깔도 다르고 내부 에테르도 완전히 달랐지만.

라하브레아: ……무슨 소리지? 기억을 크리스탈에 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판데모니움에 일어나고 있는 이변을 경고하는 소리가 들렸다는 건 그냥 지나치기 어렵군……. 이 사건을 아는 자가 우리와 아젬 말고도 또 있다는 뜻인가?

에리크토니오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왜 나타나지 않는 거지? 어떤 사정이 있든 간에, 사건이 해결된 지금도 크리스탈의 주인을 모른다는 건 이상해.

라하브레아: ……해방된 간수에게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 누군가가 위기를 외부에 알리려고 했을지도 몰라.

에리크토니오스: 그걸 알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거야. ○○이 이곳에 계속 머물 필요는 없으니까 나중에 결과를 들으러 와 줄래?

테미스: 그래, 이 사건의 최대 공로자는 너야. 뒷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넌 여행을 계속하도록 해.

라하브레아: ……여행이라니, 그것참 아젬에게 어울릴 만한 단어로군.

테미스: 어떻게 보면 비슷해. 그녀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알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에리크토니오스: 일단 크리스탈을 맡긴 사람에게 보고부터 하겠지? 혹시 크리스탈을 다시 빌릴 수 있다면 갖고 와줘. 라하브레아에게 보여주면 또 다른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라하브레아: 에리크토니오스가 허리에 달고 있는 크리스탈은 오래 전, 마법을 발동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내가 준 거다……. '감옥'을 구사할 수 있게 된 지금은 필요 없겠지만.

에리크토니오스: 그러고 보니…… 내가 변신했을 때, 라하브레아의 가면이 붙어 있었던 거 눈치챘어? 변신 후의 모습에는 자신의 정신이 반영된다고 해. 그 가면은 내 마음의 족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네.

테미스: 넌 크리스탈을 맡겼던 사람에게 돌아가면 돼. 뭐야, 서운해하지 마. 이상하게 또 만날 것 같단 예감이 들거든…….

 

(아포리아 본부에서 대화)

루이스노: 앗, ○○ 님! 다행입니다, 돌아와 주셔서……. 큰일 났습니다……! 클로디엥 선생님이 타셨던 비공정과 통신이 두절돼서……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없게 됐어요! 하필 또 이런 상황에 별바다를 관측하는 기기가 평상시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에너지량의 발생을 감지해서요. 죄송하지만, 저와 같이 아이티온 별현미경으로 가셨으면 해요!

 

루이스노: 뭐, 뭐죠, 이것은! 어떻게 이런 일이 현실로…….

???: 문제가 크게 발생하는 곳에는 어째서 늘 자네가 있는 겐가…….

푸르슈노: 그리고……. 여기 두 사람은 클로디엥의 조수 아닌가? 나보다 빨리 이곳으로 달려온 걸 보니…… 너희들, 이 사태와 무관하단 소리는 못하겠지?

 

푸르슈노: 대략적인 연구 내용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았지만…… 설마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줄이야.

넴지지: 클로디엥 선생님 말입니다만, 마지막 통신에 따르면 '마대륙'으로 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했는지조차…….

푸르슈노: 새로운 발견을 앞두고 어지간히 조급했던 모양이군. 클로디엥답지 않게 경솔한 행동이야……. 이슈가르드에 협력을 부탁하고 탐색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별바다에 나타난 '판데모니움'으로 보이는 건축물…… 이쪽도 대처가 시급해. 일단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고…… 별바다 연구에 종사하는 자들을 모아 별현미경으로 감시하면서 별바다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

너희는 지금 당장, 상세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현재로서는 불확실한 사실이 너무나도 많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대응책을 검토할 테니 방침이 정해지는 대로 사태 수습에 협력해다오. 고맙다……. 난 서둘러 철학자 의회에 보고하러 가야 하니 이만 실례하마.

루이스노: 아아…… 하필 이럴 때 별바다 관측의 제1인자인 클로디엥 선생님이 안 계시다니……. 별바다에서 나타난 크리스탈도 클로디엥 선생님께서 가지고 가버려서 단서라고 할 만한 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두 사건이 무관하다고 생각할 만큼 저도 둔하진 않아요.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어떤 자가 선생님의 탐색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겠죠.

그나저나 말로만 듣던 판데모니움이 시대를 초월해 눈앞에 나타나다니요……. 창조 생물이나 간수분들도 함께 현대로 온 것일까요? ……하긴 여기서 생각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우리는 푸르슈노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서둘러 보고서를 작성할까 합니다! 그러니 ○○ 씨, 지금은 기력을 보충해 두세요.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그때 잘 부탁드릴게요!

영혼을 모으는 자

루이스노: 아, ○○ 씨! 다행이다, 당신이 오면 바로 연락해달라는 푸르슈노 님의 지시가 있었거든요. 마대륙에서 연락이 끊긴 클로디엥 선생님…… 그리고 별바다에 갑자기 나타난 대감옥 판데모니움. 그 모든 것에 관한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해요. 푸르슈노 님께는 제가 연락을 할 테니까 당신은 타우마제인의 승강기로 '아이티온 별현미경'으로 가세요! 그쪽에서 만나도록 해요.

 

(아이티온 별현미경에서 대기)

푸르슈노: 건강해 보여 다행이군. 만나자마자 미안하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마. 일단은…… 마대륙에서 연락이 끊긴 클로디엥의 수색 결과부터 보고하지. 수색대는 그곳에 위치한 '마과학 연구소' 부근에서 그가 타고 있던 걸로 보이는 비공정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군.

그뿐만이 아냐. 마과학 연구소 내부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을 확인했는데……. 추적해보니…… 내부의 한 구역이 통째로 소멸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내부 공간을 도려내서 통째로 다른 곳으로 전송한 것처럼 보였다고 해.

넴지지: 전송이라니 어디로 말입니까……?

푸르슈노: 우리는 이곳…… 별바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해당 구역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을 아예 통째로 바꿔서 저 '판데모니움'을 생성한 게 아닐까 싶다.

루이스노: 그, 그럼 클로디엥 선생님도 판데모니움 안에……?

푸르슈노: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 판데모니움 안으로 들어가서 조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 신속하게 대처해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자네는 일단 그것부터 해결해줬으면 해. 조금 전, 그동안 조용하던 판데모니움에서 이상한 것이 튀어나와 날아다니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푸르슈노: 별현미경으로 관측한 결과에 의하면 그 녀석은 별바다에 가득한 에테르를 흡수하면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넴지지: 무, 무슨 짓을……! 별바다의 에테르는 죽은 자의 혼이자 훗날 태어날 새로운 생명의 근원인데…… 그것을 잃어버리면 생명의 순환이 멈춰 버릴 겁니다!

푸르슈노: 맞다……. 그 횡포는 즉각 막아야 한다. 따라서 그 위협적인 존재를 처치하는 일과 판데모니움에 대한 조사 강행을 정식으로 자네에게 의뢰할까 한다. 그리고…… 마대륙에 남아 있던 비공정 내부에서 클로디엥이 갖고 있던 기억의 크리스탈을 발견했는데 이것도 자네에게 맡기마.

넴지지: 보고서에 있던, 테미스 님의 환영체 소환은 이제 안 될 거예요. 혼자서 위험한 도전을 하셔야 하는데, 과연 괜찮으실지…….

 

▷ 소환 술식은 나도 쓸 수 있어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넴지지: ……네 물론이지요! 이 넴지지가 정보 정리 및 제공 등,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겠습니다!

푸르슈노: 전송마법 연구소의 직원을 불러 전송진을 임시로 설치했다. 그걸 통해 표적이 있는 곳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잘 부탁한다……!

넴지지: 판데모니움에 관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면서 아포리아 본부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자세히 조사……. 참으로 보람이 느껴지는 일입니다!

루이스노: 이번에는 별바다 깊은 곳까지는 들어갈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 씨의 관측은 제가 해두겠습니다!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천옥편 1 공략 후)

???: 역시, ○○ . '기억'과 다를 바 없는 실력이네. 만나는 건 처음이지?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라도 일단 내 이름부터 소개할게.

아테나: 난 판데모니움의 장관 '아테나'라고 해. 라하브레아의 부인이자 에리크토니오스의 엄마……. 그리고 명계에 대감옥을 만든 사람이야. 당신의 기억을 따른다면 모든 일의 '원흉'인, 최악의 악당이라 할 수 있겠네.

그런데 사실 이 시대에 당신이 있을 줄은 몰랐어! 생각지도 못한 일 때문에 고심하던 차에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과거의 사건을 들여다봤을 때부터 당신에게 관심이 있었거든. 경계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진정해. 라하브레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저 내 지적 호기심에 따라 연구를 한 것뿐이야. 지금 이 시대에 부활하고 나서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 그러니 평화로운 사태 수습을 위해서라도 내 주장을 들어주지 않을래?

 

▷ 연구를 그만둘 생각은 있는 거야?

▷ 부활했다고?

클로디엥을 돌려줘

 

아테나: 클로디엥…… 아아, 마대륙에 있던 그 사람 말이구나. 그는 신의 형태를 만드는 재료로 써야 해서 내 연구에 꼭 필요해. 절대 낭비하지 않고…… 끝까지 남김없이 잘 쓸 테니까 안심해. 당신도 역시 라하브레아와 같은 생각이구나. 직접 말로 해서는 이해를 못 하네.

그렇다면……. 당신…… 상당히 재미있는 것을 갖고 있네. 그래, 바로 그거……. 내부에 기억이 담겨 있는 크리스탈. 그 안에 봉인돼 있는 것은…… '라하브레아'와 '에리크토니오스'의 기억. 그 기억을 명계에 떠도는 혼에 새겨 존재를 고정시켜 줄게…… 당신의 안내인 역할을 하도록.

 

에리크토니오스: 여긴…… 어, 어째서 당신이……!

아테나: 일단은 두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더 들어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기에…… '테오스'가 되려 하는지. 당신도 그들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중에 안내인을 한 명 더 보내줄게. 손에 넣은 혼이 '구멍투성이'라서 쓸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 찾아낸 기억으로 조금은 복구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난 당신이 필요해. 그러니 당신이 내 연구에 협력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사라지는 아테나)

라하브레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네가 ○○ 인 건 틀림없는 것 같군. 알 수 없는 점이 너무나 많다. 무슨 상황인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어디 침착하게 얘기할 만한 곳은 없는가?

라하브레아: 이 공간…… 이 몸……. 몇 가지 짚이는 건 있지만, 일단은 진실을 알고 있는 네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에리크토니오스와 대화)

에리크토니오스: ○○ , 오랜만이네……. 네 표정을 보아하니 서로의 인식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줘. 여기는 어디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렇구나. 네가 기억의 크리스탈에 대해서 말했던 건 분명 기억이 나. 그게 설마 우리가 남긴 것이었을 줄이야……. ……게다가 넌 '미래'에서 온 거였구나. 어쩐지 간수로 돌아간 뒤에 널 찾아본 적도 있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니.

 

(겁먹고 멀찍이 서있는 넴지지와 루이스노. 그들을 응시하는 라하브레아)

에리크토니오스: 일단은 서로의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야겠지. 지금 여기 있는 우리는 '종말'이라 불리는 재해를 겪고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을 때의 기억을 갖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 미래가 있다는 건 우리는…… 종말의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거구나?

라하브레아: 우리와는 다른 존재인 듯하지만, 여기에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물며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 불과할 뿐이니. 이 시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테나를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거다……. 지금은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에리크토니오스: 우리들의 몸은…… 육체적, 마법적 힘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 여기에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체'의 기억을 재현한 존재일뿐. 전투가 벌어지면 전혀 도움이 안 될 거야.

라하브레아: 아테나가 우리에게 안내자 이상의 역할을 준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그 사람의 생각대로 되게 놔둘 것 같으냐. 이 '기억'으로 아테나에게 대항할 것이다.

에리크토니오스: ……그나저나 아테나는 어떻게 ○○과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는 걸까?

라하브레아: 연구에 이용하려고 모종의 수단을 써서 과거 판데모니움에서 일어난 사건을 관측하고 있었을 테지. 우리도 대항할 방법을 강구하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이 시대에서 판데모니움을 둘러싼 상황과…… 그리고 ○○의 협력자인 저들이 갖고 있는 지식도.

(넴지지와 루이스노를 다시 응시하는 라하브레아. 두 명은 놀라 서로 눈치를 본다.)

눈을 뜬 '판데모니움'

넴지지: 제가 아직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저 사람들은 우리 편이라 생각해도 되나요……?

루이스노: 어, 어딘가 무서워 보이는 사람과, 살짝 예민해 보이는 사람이! 저 두 사람은 혹시……?

에리크토니오스: 이 시대에 연구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인가? 우리에게 부족한 현대 지식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되겠어.

라하브레아: 그런데…… 왜 저렇게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는 거지? 저들의 심정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없다. 이쪽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

 

넴지지: ……기억에서 생겨난 존재라고는 하지만 보고 내용으로만 듣던 분과 직접 만나게 되다니요. 솔직히 흥분도 되고 당황스러우면서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루이스노: 아, 아아……. 다리가 너무 떨려서 서 있기도 힘들어요……!

에리크토니오스: 지금 우리에겐 아무런 힘도 없는데 두려움을 느낀다고……?

넴지지: 그야 당연하죠! 옛 시대를 살아 우리에게는 없는 지식이 있는……. 그런 분이 앞에 계시는데 어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두려워만 하고 있을 순 없죠. 저희가 작성한 기록과 자료를 두 분께 공유하겠습니다. 서로의 지식을 합치면 찾을 수 있는 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라하브레아: 후방에서 지원하더라도 정보는 반드시 필요한 법. 물론 우리도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기억'은 전달하마. 특히 흑막인 아테나에 대해서 말해야겠지……. 그토록 끝없는 탐구심을 가진 자를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에리크토니오스: 그 염원도 당시와 달라진 것이 없어. 생명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 즉 '신'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

라하브레아: 아테나가 정의하는 '신'이란 혼을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 그래서 명계…… 아니, 지금 시대에는 별바다라 불리는 이곳을 본거지로 택했을 것이다. 대량의 에테르라는 '재료'를 풍족하게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에리크토니오스: 생명의 순환을 파괴하면서까지 실험을 계속하려 하다니, 그렇게까지 욕망에 깊이 빠져 있단 말인가……. 한순간이었지만 조금 전 아테나를 만났잖아? 그 미소도, 그 목소리도…… 전부 어린 시절의 '기억' 그대로였어. 나도 모르게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라…….

(말없이 응시하는 일행들)

에리크토니오스: 뭐야! 그렇다고 적당히 봐주자는 건 아냐. 진짜 에리크토니오스도 그건 바라지 않을 테니까.

라하브레아: 우리는 여기서 최대한 조사와 정보 수집을 하고 있겠다. 판데모니움에 잠입해서 전투를 하는 건 네게 부탁하마. 라그리고 우리의 기억이 봉인돼 있다는 크리스탈을 빌려줄 수 있겠나? 도움이 되는 정보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을 테니.

에리크토니오스: 이제 드디어 판데모니움 내부로 들어가는구나. ○○, 다시 한번 잠입 경로를 확인해두자.

라하브레아: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성석'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넴지지: 아, 네…… 그렇게 불리는 물건에 관한 기록은 몇 번 봤습니다. 이발리스 전설에 등장하는 크리스탈이라든가, 그리고 아씨엔 라하…… ……아, 아뇨. 아씨엔이라는 존재가 가져왔다는 '흑성석 사비크'. 모두 엄청난 힘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라하브레아: 그래…… 이 시대에도 존재했었군.

 

(에리크토니오스와 대화)

루이스노: 그러고 보니 고대인은 현생 인류보다 몸집이 크다고 들었는데요, 두 분 모두 키는 저희와 크게 차이가 안 나네요. 재현된 모습이라서 그런 걸까요?

라하브레아: ……생각하는 중이다. 넌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넴지지: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리시는군요. 그 얼굴로 말까지 없으시면…… 완전 긴장되는데요.

 

???: 네가 여기로 올 거라 믿고 있었어. 

테미스: 또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했잖아…… 내 말이 맞지? ○○…….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할 테니 들어줘. 먼저 나는 진짜 테미스가 아냐. 아테나가 이 공간에 떠도는 혼으로 만들어낸…… 라하브레아와 에리크토니오스처럼 기억에서 생겨난 그림자에 불과해.

하지만 상황은 이해하고 있어. 여기가 아주 먼 미래라는 것도 말이야. 수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테나가 이 시대에 부활했고, 넌 그녀를 막기 위해 이렇게 판데모니움을 찾아왔어……. 맞지? 다행이다…… 그래야겠지.

 

테미스: ……유감이지만,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나는 창조주인 아테나가 자신의 목적대로 움직이도록 조작해 놓은 상태인 것 같아. 지금도 너에게 조언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줘.

(슬픈 표정을 짓는 모험가)

테미스: 나는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

▷ 아그디스티스처럼 주박을 풀어줄게!

 또다시 엘리디부스를 쓰러뜨리고 싶지 않아

 

테미스: 그 반응의 진의는 모르겠지만…… 네가 거부하더라도 난 네 앞을 가로막을 거야. 헤파이스토스에게도 쓰인 것처럼 아테나의 정신 주박은 상당히 강도가 세거든……. ……아무튼 지금부터 하는 얘기를 잘 들어줘. 아테나는 '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에리크토니오스를 대신할 몸체를 마련했어. 그리고 별바다에서 혼을 더 모아서 존재를 보강할 생각이지. 

 

테미스: 하지만 주워 모은 혼만으로 '신'이 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 그래서 혼은 흐리지만 헤파이스토스를 능가하는 힘을 가진, 네 힘의 비밀을 밝혀내려 하고 있어. 이 전투는 그것을 위한 거야……. 그녀가 감시하는 앞에서 이 녀석과 싸워줘.

 

(판데모니움 건물이 무너지며, 그 사이에서 나타난 꿈틀거리는 무언가와 융합하는 괴물)

 

넴지지: 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라하브레아: 일단은 자세히 관측을…… 어떻게든 내부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판별해야 한다. 설령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에리크토니오스: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니……. 부탁해, ○○……. 

 

테미스: 판데모니움. 생명이 없는 건물에도 혼을 부여했군……. 부활한 아테나는 라하브레아에게 목숨을 잃었던 시절과 달라. 완전한 혼을 창조할 수는 없지만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왔어. 하지만 괜찮아, 너라면 판데모니움도 쓰러뜨릴 수 있어. 그리고 그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나를 쓰러뜨리고…… 완전한 '신'에 이르기 전에 아테나를 막아줘.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천옥편 2 공략 후)

테미스: 아주 훌륭한 전투였어. 나도 모르게 푹 빠져서 봤어…….

(달려오는 에리크토니오스와 라하브레아)

에리크토니오스: ○○, 이건……!

테미스: 판데모니움 최심부로 가는 '문'을 열어두었어. 네가 찾아오기를 기다릴게…….

(사라지는 테미스)

에리크토니오스: 이쪽 일대를 감싸고 있는 구체를 관측한 결과, 우리도 통과할 수 있다고 판단해 뛰어들어왔는데…….여기 있던 사람…… 테미스 맞지?

라하브레아: ……들려다오.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를.

 

(라하브레아와 대화)

에리크토니오스: ……테미스가 적이 된다고?

라하브레아: 아테나가 과거의 판데모니움을 관측했을 거라고 추리했을 때, 그 생각을 했어야 했다. 테미스…… 엘리디부스는 나와 같은 14인 위원회의 일원이다. 그 자리에 걸맞은, 훌륭한 지식과 마력을 갖고 있어……. 아테나가 그런 존재에게 관심을 안 가질 리 없지. 별바다에 떠도는 엘리디부스의 혼에서 녀석의 기억을 훔쳐, 우리처럼 재현체를 생성했을 거다……. 그리고 그 잘난 정신 주박을 써서 꼭두각시로 만들었겠지.

에리크토니오스: ……○○, 테미스는 '판데모니움에 혼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했지? 무기물에도 혼을 부여할 수 있다니……. 아테나의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란 걸 알게 된 셈이군. 하지만 우리도 수확이 없었던 건 아냐. 현대의 정보까지 얻고 나니 아테나 부활에 대한 의문을 추측할 수 있게 됐어.

'흑성석 사비크'라는 이름의 결정…… 그게 모든 것의 열쇠야. 연구원들에게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략적인 역사를 들었어. 세계가 분단되어 일부 고대인이 아씨엔이 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일어난 재해라는 현상……. 쉽사리 믿기 어려운 내용들뿐이었지만…… 그중에 라하브레아의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어. 그게 흑성석 사비크야.

 

라하브레아: ……흑성석 사비크는 절대적 위력을 자랑하는 마법 '알테마'가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도 그 내부를 들여다본 적이 없는 의문의 결정이지. 아씨엔은 전쟁을 조장하기 위해 갈레말 제국의 장군에게 이 결정을 주었고, 그 결과 알테마 웨폰이라는 병기가 만들어졌다고 하더군. 아씨엔이라는 자의 정체는 추측밖에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너라면 답을 알고 있지 않나? 아씨엔이란 혹시 세계 분단 후의……

아니, 자세히 묻는 건 나중에 해야겠군……. 지금은 흑성석 사비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하도록 하지. ……알고 보면 원래 사비크는 라하브레아 학술원에서 아테나가 만들어낸 물건이다. 판데모니움이 지어지기 훨씬 이전의 일이지. 아테나는 방대한 힘을 가진 결정을 본인이 직접 발견했다면서 라하브레아 학술원으로 가지고 왔었다. 그녀는 그것을 '성석'이라 부르면서 열심히 연구하더니 결국 새로운 물질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흑성석 사비크다.

 

성석이 뭐지?

▷ 고대에도 성천사 알테마가 나타났던 건가….

 아테나는 어디서 성석을 손에 넣었지?

 

라하브레아: 공교롭게도 아테나는 성석의 출처를 절대 말하지 않았다. 별 밖에서 날아온 물질이 아닐까 싶은데 그 이상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다만, 이 '성석'에는 인간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성질이 있더군. 아테나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도 그것 때문일 거다. 하지만 내가 그 위험한 효력을 알고 그 성석을 봉인한 건 판데모니움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다음이었다……. 너무 늦었던 거지…….

에리크토니오스: ……그 후에 사비크는 어떻게 됐지?

라하브레아: 아테나를 처리한 후, 그녀의 연구실에서 압수했다. 사비크에 내포된 고밀도 에테르를 이용하면 '알테마'를 방출할 수 있다는 것까진 확인했지만, 그 이상은 분석이 어려워 일단 내가 소지하고 있었지. 하지만…… 사비크 내부가 여러 겹으로 차폐 가공이 되어 있고 '아테나의 기억'도 그 안에 들어 있었다면……. 기억의 크리스탈에서 창조된 우리처럼 아테나도 그 기억을 통해 부활해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에리크토니오스: 그것이 아테나 부활의 비밀…….

라하브레아: 몸서리칠 일이군. 아테나의 기억을 내가 줄곧 소중히 갖고 있었다니.

에리크토니오스: 판데모니움도 전투 중에 '알테마'를 사용했다면서? 그 관련 지식을 얻은 아테나가 사비크에 마법을 넣었을 테니 자신이 만든 존재가 그 마법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건 쉬웠을 테지.

그림자의 소망

라하브레아: ……이제 아테나에 대한 건 빠짐없이 다 말했다. 이제 남은 의문은 그녀가 사비크에 기억을 남겼다 하더라도 그 기억이 현대에서 어떻게 눈을 떴느냐 하는 것이지. 이 시대에 사비크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어디지?

 

▷ 알테마 웨폰과의 전투에서

 아씨엔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라하브레아: 연구원에게 들은 정보와 일치하는군. 사비크는 알테마 웨폰과의 전투에서 목격되었지만, 그곳에는 아씨엔이라는 존재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네가, 그때 도망친 아씨엔을 훗날 마과학 연구소라는 곳에서 쓰러뜨렸다고…….

에리크토니오스: 마과학 연구소……! 아까 자료에서 봤는데, 별바다의 연구자 클로디엥이 실종된 곳이 거기래.

라하브레아: 그는 기억의 크리스탈과 비슷한 에테르 파형을 쫓아서 현지로 갔다고 하는데…… 아마 그건 사비크의 파형이었을 거다. 클로디엥이 아테나를 눈뜨게 한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하지만 그자가 아테나를 부활시킬 이유는 없지 않아? 물론 정신 주박에 걸려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라하브레아: ……아테나에 관한 의문은 아직도 많아. 기억에서 생겨난 존재인데도 이 정도 사태를 일으킨 걸 보니, 아테나는 마력을 행사하기 위한 육체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육체를 대체 어디에서 구했을지…….

그리고 또……. 엘리디부스의 말을 믿는다면 아테나는 몸체…… 즉 신의 원형을 이미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신의 원형이 될 수 있는 건 에리크토니오스뿐일 텐데.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진짜 에리크토니오스는 이미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아. 신의 원형에 어울리는 육체는 영원히 없어진 셈이지.

에리크토니오스: ……여기서 계속 추측만 하고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정보가 부족하면 계속 조사하면 돼. ○○…… 우리 앞에는 그 녀석…… 테미스가 기다리고 있어. 우리의 적으로.

라하브레아: 저 '문' 너머에는 엘리디부스와 아테나가 있는 공간이 압축되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에리크토니오스: ……철없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원래 테미스의 기억으로 만든 존재니까 정신 주박에서 벗어나면 분명 우리를 도와줄 거라고.내가 주박에 걸려 헤파이스토스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도 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날 구하려고 했어. 기억에서 생겨난 존재이긴 하지만…… 테미스도 꼭 구해줬으면 좋겠어. 주박 때문에 우리와 대치하는 건 그 녀석도 원치 않을 거야!

라하브레아: 그 사고방식은 이론적이진 않지만…… 적에게 조종당한 적이 있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정보도 있지. 쓰러뜨리지 않고 힘만 빼놓는다면 기대해볼 만하다. 아그디스티스도 소멸하기 직전, 전투로 인해 힘이 떨어지면서 정신 주박에서 벗어났다. 그때처럼 테미스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있겠지.

하지만 엘리디부스도 어디까지나 기억뿐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전투용 육체는 주어졌겠지만, 어차피 그것도 임시로 빌린 것. 약해진 상태로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에테르가 부족해서 그대로 소멸해버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녀석의 상태를 꼭 주의해서 보기 바란다.

에리크토니오스: 별현미경과 언제까지 왕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우리도 이곳에 머무르다가 현대의 정보가 필요할 때만 그쪽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라하브레아: 기억의 크리스탈은 조금 전 연구원들에게 주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 외에 딱히 특별한 기억이 보이진 않더군. 그나저나 이 공간은 참으로 흥미롭군. 예전 판데모니움에서도 지배권을 가진 자가 내부 환경을 조작할 수 있었는데 여기도 그런 것인가…….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천옥편 3 공략)

테미스: 이 흥분은 아테나의 작품일까― 어떤 모습으로 너와 싸워야 할지 계속 생각했었어!

 

테미스: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보여줄게. 이것이 바로 나야!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천옥편 3 공략 후)

테미스: 후후후, 드디어 알았어. 아테나의 정신 주박은 대상자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것인데…… 나의 어떤 욕망을 이용한 건지 항상 의문이었거든. 너를 만난 뒤로 난 몇 번이나 너에게 흥미가 있다고 말했었지?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너를 알고 싶다고…… 너와 대결해서 네 힘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나 봐. 

 

테미스: ……이, 이건!? 정신 주박이 풀렸어……! 그렇구나…… 안내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단 뜻이구나. 

 

(주저앉는 테미스. 그에게 달려가 앉아 슬픈 표정을 짓는 모험가)

테미스: 그런 표정 짓지 마…… 이게 낫잖아……. 아테나의 정신 주박에 걸린 채로 끝나는 것보다 이렇게 가는 편이…….

 

▷ 테미스의 힘이 필요해

아테나가 옳은지 판결을 내려야지

 이대로 사라지면 안 돼

 

테미스: 이 따뜻한 힘은……! 너의 에테르가…… 나에게 스며들어……. 흩어져 가는 존재를 에테르로 보강해서 붙잡아준 거야? 아직 이 장소에 머물 수 있도록……. ……네가 도와주긴 했지만, 아마 존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거야. 그래도……. 이 전투의 결말을 끝까지 볼 수 있겠구나. 

 

테미스: ……나는 조정자 엘리디부스.  인간과 별의 조화를 어지럽히는 아테나의 행위를 조정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할게. 자, 에리크토니오스와 라하브레아가 있는 곳으로 가자. 최종 결전을 앞두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말할게.

 

(마의 산실에서 대화)

테미스: 또 우리 넷이 모였구나. 비록 우리 중 셋은 기억에서 생겨난 존재지만, 이렇게 든든한 동료도 없을 거야.

라하브레아: 역시 엘리디부스는 전투를 위해서 존재가 보강되었던 것 같군. 하지만 에테르가 옅어진 걸 보니 더이상 전투는 어렵겠어…….

에리크토니오스: 너와 ○○이라면…… 분명 괜찮을 거라고 믿었어.

테미스: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서 나도 기뻐. 더 이상 아테나가 제멋대로 굴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라하브레아: 그것 참 다행이군.…… 그럼 바로 아테나의 계획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 것을 들려다오.

테미스: 그녀는 이미 신의 원형이 될 육체를 확보한 상태야. 그 육체는…… 클로디엥. 어찌된 일인지 그의 육체가 아테나와 잘 맞는 모양이야. 잘 떠올려 봐……. 사람에게는 혼과 기억, 그리고 생명력이 깃든 육체가 필요해. 지금 우리는 각자 고유의 기억을 별바다에 떠돌고 있던 혼에 새기고 에테르로 보강한 상태야. 즉, 육체가 없지만 만질 수는 있는 유령 같은 존재지.

아테나가 우리와 다른 건 클로디엥의 혼과 육체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의 혼에 아테나의 기억을 새기고 육체에 빙의한 거지. 다만 세계 분단 후의 인류는 우리 시대의 사람보다 혼과 육체가 매우 약해. 그 점이 '신'의 경지에 이를 때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에리크토니오스: 아아, 그래……. 그래서 똑같이 불완전한 존재이긴 하지만, 비범한 힘을 가진 ○○에게 눈독을 들인 거구나.

테미스: 그녀의 전투를 기록함으로써 강한 힘의 비밀을 밝혀 자신을 강화시키는 데 응용하고 싶을 거야. 그게 끝나면 연구는 진정한 완성을 맞이하겠지.

 

▷ 어떻게든클로디엥을 구출하고 싶어!

▷ …….클로디엥을 쓰러뜨릴 수밖에는 없는 건가

 아테나의 기억만 분리시킬 수는 없을까

 

라하브레아: ……그렇다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아테나는 빌린 혼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주인인 클로디엥이 의식을 되찾으면 육체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에리크토니오스: 그런데 어떻게 클로디엥이라는 자가 신의 원형으로 선택되었지……?

테미스: ……그를 구하려면 그 의문부터 풀어야 해. 난 클로디엥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 아테나는 자신이 조종하는 육체를 가리키며 '에리크토니오스'라 불렀었어…….

에리크토니오스: 내 이름을……? 아니 왜?

라하브레아: 역시…….

에리크토니오스: 나를 대신할 신의 원형이라서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건가? 아테나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어.

테미스: 아테나를 쓰러뜨리고 클로디엥을 구출해야 해. 굉장히 어렵겠지만 불가능하진 않을 거야.

감옥 밑바닥에서 하늘을 바랐던 여자

라하브레아: 방금 들은 정보는 내가 가장 원하던 것이다…… 이제 클로디엥이라는 자를 구출할 가능성이 생겼군.

에리크토니오스: 정말이야? 라하브레아……!

라하브레아: 하지만 그러려면 엘리디부스를 되찾았을 때처럼 아테나의 힘을 빼놓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상대가 '신'의 경지에 이르기 직전의 상태라는 점……. 게다가 여전히 이쪽 진영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 네가 아테나에게 패배하면 모든 가능성은 사라진다. 맡겨도 되겠지?

 

▷ 반드시 아테나를 쓰러뜨리겠다

지금까지도 그랬었다

그렇게 말하니 자신이 없어진다…….

 

테미스: 그렇게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왠지 너는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 지금까지 몇 번이나 우리의 기대에 부응해 왔으니까.

에리크토니오스: 그래서 어떻게 클로디엥의 의식을 눈뜨게 만든다는 거지?

라하브레아: ……나에게 좋은 수가 있다, 믿고 맡겨다오. ○○, 걱정도 되겠지만, 지금은 아테나를 쓰러뜨리는 일만 생각해라. 잡념이 있는 상태에서 싸워도 될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냐.

테미스: ……라하브레아를 믿어보자. ○○, 넌 최종 결전을 준비하도록 해.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 난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성석의 영향으로 욕망이 극대화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아테나는…… 그 욕망을 마음에 품은 채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을까?

라하브레아: ……나 역시 줄곧 그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 대답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 그보다…… 아들아. 너에게, 너에게만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이야기하는 라하브레아)

에리크토니오스: ……나도 지금은 네가 승리하기만을 기도할게. 그 후의 일은 아테나와 직접 대치한 다음에 생각하자.

테미스: 이 판데모니움은 아테나의 지배하에 있어. 아마도 '신'에게 어울리는 장소를 준비해서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마의 전당 판데모니움: 천옥편 4 공략 후)

아테나: 아아, 어째서 날 방해하는 거야? 수없이 많은 세월을 애태우며 숨막히는 돌 안에서 버텨왔어. 그토록 바라던 염원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는데……!

에리크토니오스: 그저 혼자만 바라는 소원이라면 그건 사리사욕에 지나지 않아. 모두가 원하고 응원해주는 것이어야 해. 그러니까 가르쳐줘, 아테나. 연구의 끝…… '신'이 된 몸으로 이 세계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건지.

라하브레아: 그 대답을 듣는다 한들 아테나가 별에 해를 끼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에리크토니오스: ……그래도 알고 싶어. 어머니가 원하던 것의 정체를. 

 

아테나: 에리크토니오스…… 그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네게 탐구자의 소질은 없어 보이는구나. 이론을 완성시킨 뒤, 지식을 탐구하는 자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실천을 통해 자신의 이론이 맞았음을 밝혀내는 것……

 

아테나: 바로, 증명이야. 신이 되어 '생명'의 신비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생물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어! 인간을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존재조차 쉽게! 

 

아테나: 아직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의 생명을 양분으로 삼아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 이 별을 가득 채울 거야……!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지금을 사는 자를 유린하고 새로운 생명과 함께 살겠다니 그건 세계를 파괴하는 짓이야!

아테나: 뭐가 나쁘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세월 동안 이 별에 좋다고 판단한 생물을 창조해 왔어……. 뛰어난 생물을 풀어놓으면 기존의 약한 생명은 결국 사라지지. 아니, 사람이 손대지 않아도 자연계 안에서 일어나는 경쟁은 진화와 도태를 가속화시킨다고. 그런 생물을 내가 신이 되어 이끌겠다는데, 대체 뭘 가지고 '악'이라고 단정 짓는 거야? 딱히 상관없잖아.

라하브레아: 성석은 인간의 '간절한 소원'을 구현해주는 성질이 있다. 즉, 그녀가 말한 소원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테나의 본심이란 뜻이다.

 

아테나: ……신의 원형으로밖에 쓸모없는 '몸체'에 불과한 주제에 그런 표정을 짓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구나. 자아만 성장할 수 있도록 정신을 남긴 것이 잘못이었어.

에리크토니오스: ……무슨 뜻이지?

 

아테나: 어머, 눈치 못 챘어? 널 낳은 건 신의 원형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야……. 그 육체도 당연히 나에게 맞도록 '개량'한 것이고. 그것 말고도 내 말을 잘 듣게 하려고 강한 애정을 심어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손봐줬는데. 이렇게 정면으로 반발할 줄이야.

에리크토니오스: 이 몸도, 이 감정도 당신이 이용하기 위해서 만들어 냈다는 거야……? 엄마를 향한 정을 버리지 못하고 마법도 잘 쓰지 못하는 자격 미달. 그런 존재가 되게끔……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구나.

테미스: 하지만 넌 그 운명을 뒤집었어. 지금 네가 여기 있는 건 아테나를 막기 위해서잖아!

에리크토니오스: 고통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어. 타인의 자아를 보지 않고 이용하기만 하는 당신을 '신'으로 인정할 수 없어! 

 

아테나: 그렇다면 나도 '악'에 어울리게 행동하면 그만이야……. 내 것이 되지 않는 별 따위,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테미스: 이런…… 마력을 방출해 별바다에 가득한 혼을 없애버릴 작정인가……! 저대로 놔두면 이 별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게 돼!

에리크토니오스: ……그럼 아테나 자신이 억제시키도록 하면 돼. 이 전투에 임하기 전, 라하브레아가 내게 말했어. '네가 마지막 열쇠다'라고. 클로디엥이라는 자는 내 혼을 물려받은…… 즉, 이 시대에 사는 '나'인 거지? 그래서 신의 원형으로서 아테나와도 잘 맞았던 거야……. 클로디엥의 혼은 나와 동등한 성질을 갖고 있어. 그렇다면 이 환영체에 들어 있는 기억도 그와 맞을 테니 영향을 줄 수 있을 거야…….

테미스: 클로디엥에…… 그를 포섭한 아테나와 융합하여 그 혼을 흔들어 깨우려는 거야!?

에리크토니오스: 타인의 의지가 육체 안에서 눈을 떠도 아테나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지…….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 않겠어? 자격 미달 에리크토니오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매던 남자가 드디어 자신의 역할을 찾아냈어.

 

라하브레아: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다……. 그래서 네게 결단을 맡긴 것이다. 가거라. 넌……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아테나: 에리크토니오스…… 너, 무슨 짓을……? 그…… 그만둬! 에리크토니오스!

 

에리크토니오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말을 따르지 않아. 내 기억과 마음이 따르는 건……. 아버지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야!

 

아테나: 커헉, 크아아아아아아!!! 힘을 못 쓰겠어…… 육체를 유지할 수 없잖아!?

 

테미스: 이건…… 육체를 잃어서 아테나의 마력은 소멸되었을 텐데……?

라하브레아: 소멸되었기 때문이지. 이 판데모니움도 그녀의 마력으로 존재했던 곳이었다. 그게 사라지니 붕괴하기 시작한 게다……. 우리는 그렇다 치고 이곳을 ○○의 무덤으로 만들 수는 없다.

(사라지는 라하브레아, 테미스, 클로디엥, 모험가. 홀로 남겨지는 아테나)

 

아테나: ○○도 아니고 라하브레아도 아닌 에리크토니오스에게 당할 줄은……. 그게 가장 치명적인 오산이었구나.

 

아테나: 이런, 아직도 엄마에게 할 말이 남았니……? 아니면 마지막으로 정에 이끌려 클로디엥의 육체를 데리고 와 준 거니……?

에리크토니오스: 미안하지만…… 여기 있는 건 당신의 기억에 새겨진 잔상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악'의 멸망을 지켜보는 것뿐.

아테나: 그것 참 유감이구나……. 정말 끝까지 도움이 안 되네.

에리크토니오스: 당신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고, 누워있는 아테나와 그녀를 바라보는 에리크토니오스)

 

(공간이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빛나던 공간이 사라지고, 다시 고요해진 아이티온 별현미경)

루이스노: 결국 선생님은 왜 혼자 마대륙에 가신 걸까요?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예요. 빨리 눈을 뜨셔야……!

넴지지: 클로디엥 선생님의 몸에는 큰 이상이 없는 듯합니다. 이제 의식이 돌아오기만 하면…….

라하브레아: ………….

테미스: 그 에리크토니오스는 어디까지나 기억에 불과한 존재였고 진짜가 아니라서 소멸해도 괜찮다고…… 네가 그렇게 생각할 리 없다는 건 잘 알아. 그래도…… 에리크토니오스는 충분히 각오하고 행동한 거야. 슬퍼하기보다는 그의 각오를 자랑스럽게 여기자. 그리고 너도 잘 싸워줘서 고마워. 아테나의 욕망을 짓밟을 수 있었던 건 너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우리는 별바다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클로디엥이 눈뜨길 기다릴 생각이야. 너도 피곤할 테니 좀 쉬도록 해…….

테미스: 우리는 클로디엥이 눈뜨기를 기다릴게. 너도 고생 많았으니 좀 쉬도록 해…….

'별'에게 소원을

라하브레아: …………엘리디부스에게 들었지 않나. 이자가 눈뜨기를 기다리겠다.

모든 것이 끝난 지금, 네게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네가 없는 동안, 넴지지라는 아가씨한테서 그 이름을 들었다……. 마대륙에서 사라졌다는 '아씨엔 라하브레아' 말이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기록으로만 아는 존재라며 나와 동일한 존재라는 확증은 없다고 배려해줬다만.  하지만 '흑성석 사비크'를 가지고 활동했다는 걸 알면서 더 높은 가능성을 외면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직접 상대한 너에게 증언을 듣고 싶다. 재해라는 현상을 일으키려고 암약했던 아씨엔 라하브레아. 그 녀석은…… 나, 라하브레아의 미래의 모습이 맞나?

 

▷ ……. ….

▷ 나도 단언할 수 없다

 동일 인물이다

 

라하브레아: ……단언하는군.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받아들이겠다. 아씨엔, 다른 이름으로는 하늘사도. 분단된 세계를 통합하기 위해 암약하는 자들……. 목적을 위해서라면 믿기 어려운 짓도 했다고 들었다. 별을 좋게 만들겠다는 신념 아래, 분단된 세계에서 '악'을 자처한 건가.

……나다운 결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나 자신은 닳아 없어졌어도 별을 위한 나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군. 목적을 위해서 아내가 남긴 사비크조차 이용했으니 무엇을 잃든 조금도 상관없었을 테지. 라하브레아로서, 모든 것은 이 별을 위해서……. 하지만 난 끝까지 사비크의 표층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힘'으로만 인식했던 것 같지만 말이다. 그것도 참…… 모순이군.

테미스: ○○, 라하브레아. 클로디엥이 눈을 뜬 것 같아.

 

클로디엥: ○○ 씨,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당신이 아테나를 쓰러뜨려 주신 것……. 그리고…… 거기 계셨죠. 라하브레아 씨…….이 몸에 들어온 에리크토니오스의 기억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라하브레아의 엄격함은 마치 화염과 같아서 아들인 그의 마음을 태우고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엄격함은 결코 사욕 때문이 아니에요. 모든 책임을 떠안고 무엇 하나 버리려고 하지 않았죠. 그래서……!

라하브레아: ……그만해라. 에리크토니오스의 기억을 얻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으로 환생한 이상, 넌 나의 아들과는 다른 인격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서 나와 넌 적대관계이기도 했을 거다. 그런 상대를 옳다고 인정하는 말을 입에 담아선 안 돼.

클로디엥: 네, 아씨엔 라하브레아의 소행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아씨엔이 아니라 그저 '라하브레아'일 뿐. 그리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아테나를 물리치기 위해 힘을 써주셨습니다. 그 행동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라하브레아: ……궤변이라 불려도 어쩔 수 없는 발언이다. 여기에서만 말하고 끝내라. 이번에야말로 판데모니움을 둘러싼 사건은 끝났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몇 가지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헤파이스토스의 봉인을 푼 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관심이 있다면 과거의 판데모니움으로 가라. 그곳에 답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과거의 우리들에게 아테나 이야기는 하지 말아다오. 무엇을 말하든 내가 선택하는 길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 시대에 알 수 없는 정보를 주지도 않을 거다. 자, 이제 해야 할 말은 다 했다. 나도…… 에리크토니오스 뒤를 따르마. 

 

라하브레아: 꺼림칙한 기억은 그저 사라져갈 뿐. 이것이 라하브레아의 최후다. ……잘 있거라.

테미스: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이제 얼마 없지만…… 아직 소멸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어. 모든 일의 전말을 알게 될 때까지 함께 있게 해줘. 라하브레아의 말을 확인하러 과거로 갈 거지? 그 시대에서는 테미스가 직접 체험했겠지만, 네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는 여기에 있는 나만 들을 수 있잖아.

고마워. 그럼 바로 과거의 판데모니움으로 가. 이 별바다에서 너와 마지막으로 나눌 대화를 기대하면서 기다릴게.

테미스: 그럼 이제 엘피스를 경유해서 과거의 판데모니움으로 가. 그쪽의 라하브레아를 만나서 남은 '수수께끼'의 답을 확인하고 와.

넴지지: 저와 루이스노는 아포리아 본부로 돌아가 푸르슈노 님에게 빠르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로디엥: 저도 당신의 귀환을 기다리겠습니다. 체력도 아직 다 회복이 안 됐고…… 당신과 테미스 씨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거든요.

루이스노: 이번 사건이 별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선생님께서는 얼른 회복하셔서 조사를 해주셔야 합니다!

 

(판데모니움에서 라하브레아와 대화)

헤게모네: 당신은…… ○○ 님이시군요. 저는 헤게모네, 연옥층의 간수장입니다……. 당신이 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반신입니다. 헤게모네: 덕분에 이렇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지금은 감옥 내부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라하브레아 님 일행은 판데모니움의 심층에 있습니다.

테미스: 방문해줘서 고마워. 여기로 오면서 헤게모네나 간수들의 모습을 봤어? 그들을 구조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거든.

에리크토니오스: ○○ , 생각보다 빨리 다시 만났네! ……그런데 그 이상한 미소는 뭐야, 대체?

라하브레아: 이런,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만…… 대체 무슨 꿍꿍이로 다시 방문했지?

 

▷ 대답을 찾으러 왔다

당신들을 만나러 왔다

 

라하브레아: 또 알 수 없는 소릴 하는군. 우리는 판데모니움을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을 뿐이다만……?

테미스: 일부러 찾아와준 건데 그렇게 매정하게 굴 것 없잖아. 함께 판데모니움을 공략하던 사이니까 이쪽 상황을 공유해주는 게 어떨까?

일단 내가 갖고 있던 판데모니움 관리자 권한은 재빨리 라하브레아에게 반환했어. 그게 이 감옥의 원래 모습이니까. 라하브레아에게도 도움을 받아서 반신 헤미테오스 연구 분석도 무사히 끝났어. 헤게모네와 간수를 본 모습으로 돌릴 수 있던 것도 그 덕분이야.

에리크토니오스: 피해 상황 확인 및 공석이 된 간수장의 후임 등…… 정리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어. 그래도 판데모니움을 둘러싼 사건은 이 정도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해도 될 것 같아.

라하브레아: 하지만…… 마무리하기 전에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판데모니움에 관한 문제와 나의 개인적인 문제……. 이것들을 방치한 채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해결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실행에 옮길 '각오'가 부족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이기에 이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그 문제란 게 대체 뭐지?

라하브레아: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마침 내가 결심을 굳힌 순간에 네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여기까지 온 사람에게 돌아가라고 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로 방해는 하지 마라.

 

라하브레아: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라. 금방 끝날 테니…….

헤게모네: 라하브레아 님, 왜 저를 여기로 불러내셨는지요? 아직 간수들의 상황 파악도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라하브레아: 넌 아테나가 장관이었을 때부터 이 감옥을 지켜왔지. 아그디스티스를 잃은 지금, 네가 간수 중에 가장 고참일 터. 그리고 유일한 간수장이기도 한 너에게…… 한 가지, 나의 비밀을 말해야 할 것 같아 불렀다.

헤파이스토스를 이 몸에서 분리해냈을 때, 난 내 혼을 일부 잃어버렸다. 그것은 필연적인 대가였지만 당연히 그만큼 내 능력은 감퇴했지. 내게는 더 이상 14인 위원회의 일원으로 라하브레아의 자리에 선발되었던 그 무렵과 같은 힘이 없다. 헤파이스토스가 걸었던 정신 주박은 물론이고, 그걸 푸는 일조차 지금 나에겐 어려워.

헤게모네: 그런 약한 소리는 라하브레아 님께 듣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마음을 강하게 먹고……

라하브레아: 공교롭게도 난 단순한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동정은 필요 없다. 헤파이스토스는 흥미로운 연구 성과를 남겼는데, 그것에 의하면 헤미테오스에 이르려면 마음의 장악…… 즉, 정신 주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알다시피 정신 주박은 상대의 강한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지.

사실 헤스페로스나 아그디스티스는 장관인 라하브레아를 향한 경애심을 이용당했다…….  봉인에서 눈을 뜬 헤파이스토스는 감옥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대응하느라 바쁜 간수장의 틈을 노려 정신 주박으로 그들을 자신에게 복종시켰다…… 맞지?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헤파이스토스가 봉인되어 있을 때, 크리스탈에서 그 녀석을 눈뜨게 한 건 대체 '누군'가? 난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원흉인 아테나가 정신 주박을 걸어 놓은 자가 있지 않을까 하고……. 헤게모네……. 넌 간수장으로서 판데모니움을 지킨다는 사명에 누구보다도 강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지. 하지만 넌 아테나가 운영하던 시절의 판데모니움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헤게모네: 아니…… 제 충성심을 의심하고 계시는 겁니까? 라하브레아 님,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 무슨 짓을!?

라하브레아: 그 누구도, 끼어드는 건 용서하지 않겠다! 이미 말했듯이 정신 주박에 걸린 인물을 추측할 수 있어도 지금 내게는 주박을 풀 수 있을 만한 힘이 없다……. 

 

라하브레아: 하지만 각오는 끝냈다. 앞으로 좋은 별, 좋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 

 

라하브레아: 이 나쁜 감정과 기억조차 내 힘으로 만들겠다……! 그 눈에 새겨라, 그리고 명심해라. 이것이 진정한 라하브레아다!

 

테미스: ……지금 자네가 안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군.

에리크토니오스: 라하브레아…… 그녀를 처벌한 거야?

라하브레아: 처벌했다면 한 거겠지.

(눈을 뜨는 헤게모네)

테미스: 저건……. 정신 주박이 풀린 건가……?

라하브레아: 헤게모네는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 내게 적대심을 가진 존재라 하더라도 소각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 힘으로 세계를 보다 강하게 이끌어가야 한다. 더 이상 판데모니움에 매달려 있을 시간은 없어. 헤게모네, 다시 한번 내 밑에서 일해라. 지금까지 그랬듯이 책임감과 긍지를 가지고 감옥을 관리해.

헤게모네: ……아테나 님이 옳다고 생각해 한 번은 배신했던 몸입니다. 이런 저를 다시 간수장이라는 지위에 남기려고 하십니까?

라하브레아: 목적을 위해서라면 꺼림칙한 기억과 힘이라도 주저 없이 사용하겠다고 맹세한 남자가 겨우 배신 한 번 한 부하를 버릴 것 같은가.

헤게모네: ……알겠습니다. 간수장 헤게모네, 그 명을 받들겠습니다. 헤스페로스, 아그디스티스의 몫까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에리크토니오스: 책임감뿐만이 아냐, 저 거침없는 행동과 '열정'. 저게 바로 진정한 라하브레아야.

테미스: 그의 기억과 힘은 이 별을 위해 쓰여질 거야. 그것 하나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라하브레아가 아테나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일은 없겠지. 그럼 나는 같은 14인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그의 옆에 있겠어. 만일 그가 별을 위한다는 대의를 잃어버릴 것 같으면 내가 그 소행을 판단하겠어.

에리크토니오스: 그래……. 라하브레아로서 살아가기로 각오를 했다면 나도 그의 마음을 받아들일 생각이야.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관계는 끊어지게 두지 않겠어. 라하브레아의 마음은 내가 지켜줄 거야.

라하브레아: ……넌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어떤 의미로는 나와 완전히 반대되는 곳에 있는 사람이지. 네가 원하는 것이 나와 대립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서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 뻔해. 그걸 생각하면 이 은혜는…… 잊어야 할지도 모른다. 감옥 밖으로 나가 각자의 길을 가기 전에 선언하겠다.

 

라하브레아: 무엇을 잃든 무엇이 내 앞을 가로막든 내 각오는 변함없다. 그러니 너도…… 너의 길을 가라. 각자 바라는 결말을 위해서.

(끄덕이는 모험가)

헤게모네: 제 마음을 모두 꿰뚫어보고 계셨던 거네요. 모든 망설임이 사라진 지금, 다시금 라하브레아 님께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테미스: 라하브레아와 헤파이스토스, 그들이 하나였을 때부터 그는 14인 위원회의 일원이었어. 그러니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에리크토니오스: ○○, 네게도 선언할게. 앞으로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라하브레아를 도울 거야. 그럼 내 미래도 구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라하브레아: 이번에는 뜻밖에도 과거의 꺼림칙한 기억과 진정한 나 자신을 직시하게 되었군. 이건 네 덕분이기도 하다……. 너는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고 이 감옥에 갇히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에테르 거울에서 대화)

테미스: 어서 와……. 이제 넌 판데모니움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네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셈이네.

클로디엥: 어서 오십시오. 당신을 기다리면서 테미스 씨에게 제가 쓰러져 있던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들었습니다. 그 덕에 몇 가지 사소한 수수께끼도 풀렸지요……. 예를 들어 마대륙에서 나오고 있던 에테르 파장 말입니다. 그 사념은 내부에 있던 아테나의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계속 에리크토니오스를 대신할 존재…… 즉, 환생한 존재인 저를 찾고 있었던 거죠.

테미스: ……그것과 관련해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너도 처음에는 기억의 크리스탈 속의 사념이 들리지 않았던 거지?

클로디엥: 네……. 연구하던 중에 어느 날 갑자기 들리게 되었습니다. 

 

테미스: 아마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혼의 성질이 변했을 거야. 그것이 봉인된 에리크토니오스의 기억 에테르에 닿아서 그의 성질이 서서히 깨어났고……. 결과적으로 아테나의 사념도 들리게 되었던 거라 생각해. 마대륙으로 가겠다고 정한 시점에서 이미 그녀의 사념을 통해 정신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던 거야.

클로디엥: 확실히 그때는 묘하게 단독행동을 고집하기도 했고, 제가 생각해도 저답지 않은 행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념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지만 경솔했습니다.

테미스: 반성은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하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 별바다에서 출현한 크리스탈, 그 안에서 들리는 사념의 목소리. 본인이 그 목소리의 주인이 환생한 존재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

클로디엥: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억의 크리스탈에 대해서 저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조금 전 크리스탈에 새로운 빛이 깃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에리크토니오스 씨와 라하브레아 씨가 어떤 마음으로 이 크리스탈을 남겼는지……. 그것이 제가 갖고 있는 마지막 의문입니다. 에리크토니오스 님의 기억을 갖게 된 지금이라면 제가 가진 마력으로도 내부의 기억을 재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시도해봐도 좋을까요……. 

 

에리크토니오스: 미래의 세계에, 이 기억을 남긴다. 엘피스에도 결국 '종말'이 찾아왔다. 창조 마법이 폭발해 끔찍한 야수가 계속해서 탄생하고 있다.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인데도 라하브레아를 비롯한 14인 위원회는 이 사태를 수습할 비책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엘리디부스…… 아니, 테미스는 그 계획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판데모니움의 감옥 안에 있는 창조 생물들이다. 종말을 극복하더라도 세계가 다시 안정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감옥 안에 있는 불완전하고 위험한 존재가 모두 밖으로 풀려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곳은 위험하니까 누군가 감시를 해야 한다. 테미스와 라하브레아 대신에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렇기에 난 14인 위원회의 방침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내 혼을 별의 의지의 소환에 바치지 않고 이루어야 할 사명을 위해 남길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종말로 인해 내가 사라질…… 죽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만약 그렇게 된 경우라도 경고를 전할 수 있도록 그 감옥에 관한, 나와 라하브레아의 기억을 담은 크리스탈을 명계에 흘려보내기로 했다. 크리스탈에 내 혼을 잡아당길 수 있는 술식을 걸어놓았다. 혼이 명계로 돌아간다고 해도 새롭게 태어날 때 판데모니움의 위험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경고를 많이 접해본 '그 녀석'이라면 이 목소리가 전해질지도 모르겠군. 그 녀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 엘피스의 지하에서 싸웠던 것처럼 지금도 어딘가에서 야수와 싸우고 있을까…….

 

에리크토니오스: …… ○○. 재회하고 싶다는 마음도 이 기억에 새겨서 보낸다. 이 기억이……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부디 '판데모니움'으로 와줘……!

클로디엥: 그의 기억을 함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 마지막 의문도 풀렸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이제…… 이것뿐입니다.

테미스: 그건…….

 

클로디엥: ……흑성석 사비크입니다. 아테나의 기억과 제 육체를 잇는 매개체였기 때문이겠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제 품속에 들어 있더군요. 여러분 덕분에 사비크의 내용물은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지금 이 안에 아테나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석 자체의 구조는 남아 있겠지요……. 그것을 연구하는 것은 분명 유익할 테고,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씨, 테미스 씨…… 별바다의 혼을, 이 시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하는 모험가)

테미스: ……그래. 헤파이스토스에 관한 전말을 다 알았구나. 이제 기억의 크리스탈을 둘러싼 진실도 밝혀졌어. 판데모니움의 소동은 드디어 결말이 났다고 봐야겠지. 나도 아무 미련 없이 사라질 수 있겠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네 덕분이야, 고마워.

 

(모험가가 슬픈 표정을 짓자, 웃으며 입을 여는 테미스)

테미스: 수수께끼 하나 풀어 볼래? 풀든 안 풀든 네 자유야. 이 별바다에 떠도는 엘리디부스의 혼으로 만들어진 내가 무엇을 기억하고 있고,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솔직히 고백할게. 판데모니움에 대한 기억은 채워진 것 같은데,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 구멍투성이야. 아테나가 이렇게 만든 영향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기억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지? 그저 어렴풋하게 생각날 뿐이야. 너에게는 과거이자 나에게는 미래의 풍경이……. 

 

테미스: 우린 수정의 탑, 정상에서 맞섰지. 그리고 거기서 난 널 보냈어…… 우리의 시대…… 엘피스로. 왜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림자에 불과한 나는 정확히 모르겠어. ……하지만 추측할 수는 있지.

 

테미스: '나'는 결여된 기억 어딘가에서 너와 판데모니움에 도전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 모습을 잊고, 경위를 잊고, 결말을 잊었지만…… 그래도 한 조각 남은 사실이 너를 엘피스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했던 거야.

 

테미스: 그렇게 너를 엘피스로 보내서 아이리스를 구할 수 있었으니……  헛된 일이 아니었어. 너와 내가 함께 싸웠던 일은…… 무엇 하나도. 그러니 원망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

뭐, 진짜 '나'의 혼은 다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동포들과 재회하기 위해 고생 끝에 이쪽 바다까지 건너온 것 같아. 테미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집착이지만…… 마의 전당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 본 지금이라면 그 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

 

테미스: 자, 막 내릴 시간을 더 미루면 너무 눈치가 없는 거겠지? 지금 시대에 명계가 별바다라 불리는 건 마음에 들어. 여기서 빛나는 별 하나하나가 다 생명이잖아. 

 

테미스: 이렇게 수많은 별 중, 너라는 별이 내 앞에 나타난 건 행복이라고 생각해. 부디 앞으로도 이 세계조차 뛰어넘어 마음껏 날아가길 바라. 늘 머나먼 곳을 향하는 혜성처럼…….

 

(홀로 에테르 거울을 떠나는 모험가)

 

테미스: ―끝까지 모를 일이구나. 잠결에 이런 진실을 만나게 되다니. 역사는 바뀌지 않아. 승자의 길만 이어지는 법, 그런데― 이 별이 이렇게 계속 이어진다면―

 

테미스: 아아― 빛이다―

 

(아포리아 본부에서 클로디엥과 대화)

클로디엥: ……테미스 씨와 이야기는 다 나누셨나 보군요. 당신 덕분에 새로운 연구 대상뿐 아니라 제 자신의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라하브레아 씨의 말대로 저는 에리크토니오스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가슴 안에는 그들이 현대에 남긴 흔적을 쫓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 가슴에 싹튼 그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도 연구에 매진하려고 합니다. 연구하다가 당신의 힘이 필요할 때가 오면 또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클로디엥: 제 본업은 별바다 연구지만, 흑성석 사비크라는 새로운 조사 대상도 찾았습니다. 연구자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과제라고 생각해요!

▶ 아테나와 성석의 관계에 대해서

클로디엥: 이 이야기는 조사를 함께 진행했던 넴지지 씨와 루이스노 씨가 있는 자리에서 하겠습니다. 불러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흑성석 사비크를 조사하기 위해 과거 문헌을 찾아보다가 아테나와 성석 그리고 성천사 알테마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을 몇 가지 발견했어요…….  그 정보들을 정리해서 이론 하나를 세워봤습니다.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검증은 불가능하겠지만, 모험가님은 당사자이시니 꼭 들어주셨으면 해서요.

넴지지: 성천사 알테마가 이 별을 방문한 시기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테나는 모종의 방법으로 알테마에게 받은 걸로 보이는, 신비로운 결정을 손에 넣었죠. 그리고 라하브레아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그것을 '성석'이라고 부르며 연구에 몰두해…… 결국 흑성석 사비크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비크의 내부에는 아테나의 기억과 더불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밀도 에테르가 담겨 있었습니다. 아주 조금만 방출해도 일대를 초토화시킬 정도의 힘이죠.

클로디엥: ……그래요, 카스트룸 메리디아눔을 괴멸시킨 고대 마법 '알테마'의 정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씨엔 라하브레아의 발언에 따르면 한때 사비크는 고대 알라그 제국의 손에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가 혼돈의 씨앗을 뿌리려고 빌려준 거겠지요.  게다가 고대 알라그 제국의 연구자들이 성천사 알테마와 접촉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사비크의 표층을 분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제4재해 후에 사비크는 다시 아씨엔 라하브레아의 손에 돌아왔고…… 이후의 전말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입니다.

넴지지: 이렇게 역사를 풀어나가면, 성석을 가져온 성천사 알테마가 모든 일의 원흉인 것처럼 보이죠. 한편으로는 아테나의 극대화된 호기심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루이스노: ……라하브레아 님이 남몰래 한탄하고 계시더군요.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 판데모니움을 지은 것. 그 자체가 잘못이었나'라면서요.

클로디엥: 실패한 창조 생물의 연구 시설이란 건 사실 표면적인 이유……. 판데모니움은 고대인의 규범을 거스른 아테나를 수감하기 위한 '감옥'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아테나에게 연구를 계속할 여지를 준 것은…… 라하브레아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일까요? 

▶ 근황에 대해서

클로디엥: 다행히 몸에는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시 연구하던 일상을 되찾고 싶어,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을 샅샅이 읽어보고 있습니다. 물론 푸르슈노 님과 몽티셰뉴 학장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다 왔습니다. 푸르슈노 님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눈 하나 까딱 안 하시는데, 학장님은 이번 사건으로 얻은 지식을 알려 달라며 난리시고…… 두 분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라 재미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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